흐르지 않는 강의 세월이 있으니
갖은 용을 쓰고 애를 끓여도 눈앞의 상황은 별 진척이 없고 그나마 현상 유지라도 되면 다행인 시간 혹은 세월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이거야말로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싶어 때론 그 자리에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지만 눈앞의 현실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또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물론 그 사이에도 때론 작으나마 좋은 일도 있고 또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숨이 턱에 차서 헐떡대고 있을 때 때마침 쉬어갈 만한 휴식처를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세월을 두고 ‘흐르지 않는 강’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을 한다. 흐르지 않는 강과 같은 세월 또한 익숙해지다 보면 나중엔 으레 그렇거니 하면서 엄살이나 투정 따윈 아예 부리지 않게 된다.
길의 끝에 도달한다는 생각도 버리게 되고 그냥 끝이 없는 길로 받아들인다. 나그네 고생은 끝이 없으니 그를 宿命(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누구나 예외가 없이 맞이하는 세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모든 이가 이런 세월을 겪는다. 60년의 순환 속에서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은 15년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어떤 이는 이미 지나왔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장차 그런 세월을 겪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맞이하게 되어 있다.
한 개인의 삶만이 그런 게 아니라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운의 순환엔 그 어느 것도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잠깐 예로 들면 1971년 여름부터 1986년 여름에 이르는 15년의 세월이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시기였다. 이젠 먼 과거의 일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상당수는 그 시절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서든 좀 더 나은 사회와 생활을 위해 엄청난 악전고투를 겪었다.
1972년의 유신헌법으로 시작된 그 시절, 외화를 벌기 위한 필사의 노력으로 달려간 중동 건설 현장, 조세 확보를 위한 부가세와 유류세, 교육세 등등의 각종 간접세의 연이은 신설과 강행과 그로 인한 서민경제의 부담, 엄청난 비난과 반대 속에 추진된 중화학 공업 정책 등등.
하지만 무역은 늘 적자를 면치 못했으며 거기에 두 번에 걸친 오일 쇼크가 우리 경제의 숨통을 짓눌렀고 마침내 국가 부도 일보 직전에까지 갔다.
이에 미국은 당시 최고의 글로벌 은행인 시티 은행을 내세워 보증을 해주는 한편으로 일본에게 압력을 넘어 당시 40억 달러라고 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우리에게 장기 저리로 빌려주도록 주선했다. 정말 그 때는 국가의 명운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부마사태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런 사망, 또 광주에서의 엄청난 비극이 있었다.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독재를 규탄했고 또 절망했다.
그 어떤 길도 종착역에 도달하기 마련이니
그런데 1987년이 되자 갑자기 거짓말처럼 그토록 염원하던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현실의 일이 되었다. 만년 적자의 중화학 기업들이 엄청난 수출을 통해 단숨에 우리는 무역 흑자의 건강한 나라가 되었고 그 소중하던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증시는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주었고 절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아연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확장에 바빠서 신입 직원들을 정신없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채용했다. 대학만 나왔다 하면 성적에 관계없이 취업은 ‘자동 빵’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1987년 헌법이 만들어졌고 그로서 우리는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다.
사실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과거 15년간의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힘든 길,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던 그 길고 지루한 세월이 갑작스럽게 어떤 종착역에 도달했던 것이다.
당시의 감격은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참으로 먼 과거의 일이다. 벌써 30년 하고도 1년이 더 지났으니.
이에 오늘의 젊은이들은 길고 긴 인고의 세월 끝에 우리 대한민국이 맞이했던 당시의 기적에 대해 별다른 추억이나 기억이 없을 것이다. 말로 전하고 듣는 것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 섭섭할 것 없다, 오늘의 젊은이들 역시 장차 29년이 지나 2047년이 되면 또 다시 어김없이 경험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우리 주변에도 흐르지 않는 강의 세월을 보내는 이가 실로 많다.
우리 대한민국을 예로 들었지만 지금 현재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숙명처럼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무수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 숫자를 말하면 우리나라의 인구가 최근 5,180만 명이라고 하니 그 1/4인 1,295만 명은 그런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흐르지 않는 강의 세월이야말로 위대한 창조의 때
그런데 말이다,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세월의 길이야말로 실은 위대한 창조의 시기란 사실이다.
글의 머리에서 얘기했다. 갖은 용을 쓰고 애를 끓인다고 말이다. 실력이 늘고 내공이 쌓이려면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서든 해보고자 하고 살아남고자 한다면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짜내고 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부족해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또 다시 도전해간다. 그러니 스스로는 몰라서 그렇지 그 사이에 엄청난 발전이 있을 것은 물론이다.
쉽게 되면 실력이나 내공은 거기까지로 그친다.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힘들고 버거워야만 지속해서 힘이 세지고 내공이 단련된다. 되지가 않으니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서야만 할 때 사람은 극도로 창조적으로 변한다.
창조란 본시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따라서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 속에서 사람의 잠재된 위대한 창조성이 발휘된다.
그렇기에 1971년 여름에서 1987년 여름에 이르는 15년간의 세월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최고의 창조성을 발휘했던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1975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가 생산되었고 반도체 역시 1983년 삼성전자가 시작했다. 조선의 경우 1972년 울산의 미포만에 현대 조선소가 설립되면서 조선강국의 길을 열기 시작했으며 석유화학 역시 그 무렵에 시작되었다. 포항제철 역시 1976년부터 본격 확장에 들어섰다.
기술도 없고 돈도 없던 우리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죽어라 악을 쓰면서 현실에서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될 때까지 들러붙었던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니 그 모든 것은 결국 창조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를 가도 선진국 대접을 받는다. 세계 유수의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 여권은 글로벌 암시장에서 대단히 고가로 거래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면 그 출발은 바로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았던 1971-1986년이 이르는 15년간의 힘든 세월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 이후 우리는 궤도에 올랐고 탄력을 받아 비록 여러 어려움을 겪긴 했어도 무너지지 않고 줄곧 성장을 거듭해올 수 있었다.
창조는 악조건 속에서
창조란 것은 좋은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창조의 바탕은 오히려 갖은 惡條件(악조건)이라 하겠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비빌 언덕이 없는 소가 등이 가렵고 답답한 나머지 스스로 흙을 모아서 언덕을 만든다면 바로 그것이 창조인 까닭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 또한 때가 있어서 창조의 때가 있는가 하면 나태와 태만의 때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1년 가을부터 2016년 가을까지 15년간 실로 풍족과 번영을 만끽했다. 그러자 정치는 날선 이념 공방에 빠지거나 아니면 스스로 연예인처럼 변해갔다. 사람들은 이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나를 위해 무얼 해줄 수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국가에선 열심히 복지 항목을 챙기고 예산을 편성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주변엔 힘든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이상한 현실, 이게 바로 국가적 나태와 태만의 세월이다.
이제 어려워지겠지만 그 또한 꼭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하여 저 바닥에 도달하고 나면 어느새 또 다시 일어서려는 탄력이 되살아나고 다시 한 번 힘겹지만 위대한 창조의 세월을 맞이할 것이니 말이다.
한 개인의 삶도 그렇다. 어려운 창조의 때가 있는가 하면 나태와 태만으로 보내는 세월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몰락하면 또 다시 일어서는 법이니 그게 바로 순환이다.
흐르지 않는 강과도 같은 세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세월이야말로 실은 위대한 창조의 기간이란 사실. 그리고 그 세월은 운명의 사계절로 말하면 봄의 春分(춘분)에서 여름의 夏至(하지)에 이르는 기간이란 점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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