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채비를 하는 여름



그저께 밤엔 공기가 꽤나 서늘했고 간밤엔 약간 더웠다. 여름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채비할 시간 정도는 주어야겠지. 여름이 떠난다 싶으니 잠들기 직전 문득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가 떠올랐다, 그가 노래한 여름에 관한 시들과 글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올 여름 내가 한 일이 뭐였지 싶어서 생각해보니 밤하늘을 밝히던 목성을 여러 차례 바라본 것이 전부였구나 싶었다. 


23일 금요일이면 더위가 멈춘다는 處暑(처서)가 되니 가을의 첫날이 시작될 것이다. 아울러 벼꽃이 필 것이고 쌀알이 만들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삶과 운명



작업실에 나와서 헤르만 헤세의 생년월일시를 확인해봤다. 1877년 7월 2일 저녁 6시 반에 태어났다. 丁丑(정축)년 丙午(병오)월 丙子(병자)일 丁酉(정유)시.

 

사주를 보고 나니 헤세가 유독 여름을 예찬했던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헤세 자신이 바로 여름날의 태양이었던 것이다. 그가 여름을 예찬한 것은 자신의 내면과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음을 이제 알겠다. 


헤르만 헤세의 본질은 7월 2일 여름날 저녁을 붉게 물들이는 태양이었던 것이다. 유럽의 여름은 우리처럼 炎天(염천)은 아니다, 그냥 따뜻한 날들이 여름이기에 바로 헤르만 헤세 자신인 것이다. 


운세 순환을 살펴보니 丙子(병자)년이 입춘 바닥이 되고 丙午(병오)년이 운기의 절정인 입추가 된다. 


그래서 확인 차 헤르만 헤세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역시! 운기의 절정인 1906 丙午(병오)년에 작가로서의 기반을 확고하게 만들어준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Unterm Rad)를 발표했다. 그 책 속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 “지치면 안 돼. 그러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가 생각난다. 


소설 속의 수레바퀴란 다름 아닌 “운명의 수레바퀴”인 것이니 60년을 하나의 기간으로 돌고 있는 순환의 수레바퀴이다. 그 바퀴의 아랫부분은 바로 운세의 밑바닥인 입춘을 전후한 기간이 된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데미안”은 1919년에 발표되었으니 그의 운세로 보면 10월 하순의 霜降(상강)운이 되니 작가로서의 秋收(추수)를 보던 때였다. 


헤르만 헤세는 ‘불의 날’에 태어났기에 그림 그리기가 취미였다. 아울러 불교 철학에 심취했다. 그리고 삶의 과정을 보면 그 역시 운명의 정해진 公式(공식)대로 살다간 것이다. 


그의 운세가 서서히 기울어가던 무렵 독일은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시작했고 이에 그는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그리고 나치즘의 광기가 절정을 치닫던 1936년은 丙子(병자)년, 그의 운세는 입춘 바닥이었다. 스위스로 망명한 이후 독일 내에서 헤세는 매국노로 치부되었다. 


헤세와 토마스 만이 떠나가면서 위대했던 독일 낭만주의와 성장소설의 전통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독일에선 귄터 그라스라든가 하인리히 뵐, 헤르타 뮐러와 같은 훌륭한 작가들이 나왔지만 그건 모두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와 같은 이념의 압제 그리고 사회가 개인에게 가해오는 부당한 폭력에 대한 사회 고발 소설이란 점에서 결이 전혀 다르다.) 



사주를 보면 사람의 내적 본질이 눈에 들어온다.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알면 그 사람의 내면에 간직된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두고 나 호호당은 그 사람의 象(상)을 본다고 말한다. 물론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경험과 오랜 사색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가령 빛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차가운 봄날 먹구름 잔뜩 찌푸린 봄날 점심 무렵에 태어난 태양이다. 잿빛 구름 사이로 간간이 가렸다가 비치는 멜랑콜리한 해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햇빛 화창한 남프랑스로 옮겨가자 마치 미친 사람처럼 그림에 전념했던 것이다. 먹장구름에 가린 멜랑콜리의 봄날 햇빛은 바로 빈센트 반 고흐 자신이었다. 癸丑(계축)년 乙卯(을묘)월 丙申(병신)일 癸巳(계사)시가 고흐의 사주인데 이 코드들이 내 눈엔 그렇게 읽혀진다. 


낮에 시작한 글을 늦은 밤 시간 다시 이어간다. 오늘 밤 역시 열기가 제법이다. 



호호당 역시 타고난 운명의 화가인 탓에



나 호호당 역시 타고난 운명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사는 것은 아니기에 직업 화가는 아니다. 그렇기에 그냥 화가이다. 열심히 또 진지하게 그리고 있고 그리는 것을 무척이나 즐긴다. 하루라도 그림을 하지 않으면 허무한 생각이 드니 매일 그린다.

불의 날에 태어났지만 물을 좋아하기에 그림 중에서도 물을 쓰는 수채화를 즐긴다. 


유화를 해보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예전엔 경제 사정으로 유화는 물감이나 도구 등등 비용이 많이 들어서 손을 대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사정은 아크릴이나 유화를 하려면 맘껏 칠할 수 있는 화실이 필요한데 그럴 형편이 되진 않았기에 비교적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드로잉이나 수채화를 그린다. 


사실 내겐 그림에 있어 많은 스승들이 있다. 마음에 드는 모든 그림들이 바로 내 스승이다. 그림들을 자세히 분석해보면서 기법이나 표현을 따라해 본다. 그리고 그림에 관한 책도 제법 읽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은 평생 딱 한 시간, 고등학교 미술선생님께서 수업 후에 나를 불러서 자신의 그림을 놓고 얘기해주신 것이 전부이다. 


잠깐이지만 미대로 진학해볼 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금방 포기했다. 1950년대 생이라 예전엔 미대 간다고 하면 고등 룸펜, 다른 말로 백수 실업자 되기 딱 좋다는 것이 일반의 생각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께선 야, 평생 먹고 살 거 집에 있냐? 하면서 놀리셨고 선친께서도 그냥 취미로 하려므나! 하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평생 내 속에서 꿈틀거렸고 이에 나이 50을 넘기면서 그냥 그리기로 마음 먹었다. 시력이 살아있고 손을 움직일 수 있는 한 그리면서 즐기기로 했다. 나 호호당 역시 화가인 것이다. 운명의 화가. 



로트렉, 불운의 삶을 그림으로 채웠던 화가



로트렉이란 프랑스 화가의 그림을 매우 좋아한다. 이 사람의 운명에 대해 잠깐 알려드릴까 한다. 


풀 네임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이다. 


1864년 11월 24일 오전 6시에 태어났다. 이에 사주는 甲子(갑자)년 乙亥(을해)월 癸巳(계사)일 乙卯(을묘)시가 된다. 운명의 입춘과 입추를 산출해보면 癸亥(계해)년이 입춘 바닥이고 癸巳(계사)년이 입추가 된다. 


그가 태어나기 직전의 해가 癸亥(계해)년이었으니 로트렉은 사실상 운명의 바닥 근처에 태어난 셈이다. 13살 때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고 다음 해 외쪽 다리가 부러졌다. 그리고 회복되지 않았다. 현대 의학에선 유전적 질환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집안은 부유했지만 운세 바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악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평생 난쟁이 불구로 살아야 했던 로트렉이다. 흔히 물랭루즈의 화가로 알려진 이 사람의 본질을 말해본다면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24일에 내리는 겨울비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 속엔 따뜻한 양지를 향하는 강렬한 希求(희구)를 품고 있다. 


이런 타입은 어쩔 수 없이 알콜 중독과 섹스 중독자가 되기 쉬운데 로트렉은 파리의 물랭루즈를 드나들면서 술을 즐기고 무희들과 사랑을 했으며 또 그림을 그렸다. 그로 인해 매독에 감염되었고 이에 결국 35년이란 짧은 삶으로 끝내고 말았다. 


로트렉은 귀족 출신이었지만 불구였기에 신분이 비천한 무희들에 대해 동질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양지를 향하는 그의 내적 정열은 그림을 통해 표출되었다. 나는 그의 작품 하나를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에서 본 적이 있다. 두 연인이 침대에서 깊은 잠에 든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작품의 제목이 “침대 안에서”였다. Le Lit. 


두 연인이 포근한 이불을 덮어쓰고 마주해있는 모습, 눈은 반쯤 뜬 상태. 아마도 뜨거운 사랑을 나눈 후의 모습인 것 같았다. 눈이 풀려있었기 때문이다. 강렬한 선들이 엇갈리는 가운데 붉은 색을 주된 톤으로 하는 그 그림은 평생 기억에 남아있다. 


상상화일까 아니면 실제 사람들 앞에서 포즈를 잡아달라고 해서 그린 것일까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두 연인의 피곤한 듯 지친 듯 마주 보는 그 모습은 보기에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린 때가 1892년경이라 되어 있다. 로트렉의 나이 26세 무렵이고 운세 순환으로 보면 입추가 1893 癸巳(계사)년이니 그림에 대한 열정이 한창일 때의 걸작이라 하겠다. 


아마도 그는 스스로도 오래 살기를 구차하게 여겼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절망은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고 그의 희구는 어둠 속에서 잠시 명멸하는 빛무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 앞에 서면 그저 침묵하게 되니



예술이란 분야에서 평론가는 좋든 싫든 필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대가의 그림이든 유명 화가의 그림이든 아니면 서툰 작가의 그림이든 상관없다. 그림 앞에 서면 사실 말이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저 눈을 바삐 움직이면서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또 물러서서 전체를 음미해보다가 이윽고 물끄러미 바라보게 될 뿐이다, 좋은 그림이다 싶으면 더 오래 앞에 서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의 잔상은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변형되고 새롭게 만들어진다. 


세월이 지나 다시 예전에 본 그림 앞에 서면 때론 깜짝 놀랄 때도 있다. 그간 내 머릿속에 있던 그림과 눈앞의 실물은 엄청난 괴리를 나타내고 있기에 그렇다. 그러면 생각해본다, 그간 나는 그 그림을 내 가슴 속으로 끌어들인 다음 거기에 다시 내 식으로 다시 긋고 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그림인 것이다. 


밤이 깊어간다. 시각을 보니 새벽 1시 35분을 알리고 있다. 오타를 수정하고 후딱 올려야지.

 

(로트렉의 그림에 대해 얘기했더니 고마운 독자께서 그림 속의 연인들은 남녀가 아니라 여성 동성애자들이라고 알려주었다. 아주 좋아하는 그림이었는데 그런 줄 전혀 몰랐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이 더욱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