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위탕 선생, 젊은 세대에겐 낯선 이름
글을 써서 공개하는 이는 누구나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기 마련이다. 나 호호당 역시 그렇지만 그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생각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예컨대 임어당, 한자론 林語堂, 중국발음으로 린위탕 선생이 남긴 “생활의 발견”이란 에세이가 있다.
젊은 날 나 호호당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책 중에 하나인데 강의 중에 그 분의 사상과 가치관에 대해 잠깐 얘기해보고자 젊은 수강생들에게 “임어당 성생 아시는지요?” 하고 물어보면 거의 확실하게 ‘몰라요’ 이다.
몇 년 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이른바 지대넓얍이 나왔을 땐 미소와 함께 최근 젊은이들의 실용적인 접근법이란 생각을 했다. 그 뒤에 텔레비전에 그와 유사한 개념의 알쓸신잡이란 것이 나왔을 때도 그저 才談(재담) 정도로 넘겼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정도를 접할 정도면 엄청 높은 교양 수준이 되고 있는 오늘이다.
앞의 임어당 선생이 남긴 “생활의 발견”이란 에세이집은 검색해보니 1968년에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고 그 책이 만들어진 시기는 1937년이다. 국내에 소개될 당시만 해도 상당한 반향이 있었기에 대략 1953-1964년 사이에 출생한 인문계열 대졸 학력의 베이비붐 세대들에겐 거의 필독서였다. (지금도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하면 구매할 수 있다.)
그런 임어당의 책을 1982년생인 나 호호당의 아들은 상당히 유식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 이후 출생한 젊은 친구들이 알고 있기를 바라는 것은 허망한 기대가 분명하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글과 말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하려면 그 재료에 대해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과는 그 폭이 너무나도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 이른바 MZ 세대들은 교양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해서 더욱 그렇다.
그러니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안겨주고 소통하고 싶어도 글의 소재 또는 재료가 적잖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동시에 30년 이상의 나이 차가 나면 소통이 사실상 어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호호당의 블로그를 읽는 독자들 역시 연령대가 40 이하인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대부분은 그 이상인 것으로 느끼고 있다.
생활의 예술
다시 돌아가서 얘기이다. 앞의 임어당 선생의 “생활의 발견”이란 책은 원제목이 생활의 예술 즉 生活的藝術(생활적예술)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삶 자체를 예술적으로 살아보라는 말인데 예술이란 말 또한 너무 거창하니 더 쉽게 풀이하면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삶의 기회이니 ‘잘’ 살아보라는 말이다.
뭐든 잘 하면 그게 예술이다. 자전거를 아주 잘 타면 자전거 예술인 것이고 연애를 잘 하면 예술적인 연애가 된다. 임어당 선생의 책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붙여졌다.
나 호호당이 재작년에 내놓은 책의 제목을 “산다는 것 그리고 잘 산다는 것”이라 붙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제목 역시 임어당 선생의 영향이 느껴졌다. 생활의 발견 그리고 생활의 예술이란 원제목이 은연중에 호호당의 책 제목에도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태어난 거 어차피 살면 살아지는 인생이지만 기왕이면 잘 살아야 좋지 않으냐 하는 것이 호호당의 생활철학인바 이는 임어당 선생으로부터 왔고 좀 더 거슬러 오르면 노자나 장자와 같은 道家(도가)철학에 원류를 두고 있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노는 것이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이냐? 하면 그야말로 저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에 대해 나 호호당의 생각을 밝혀두면 이렇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놀다 가는 것이다. 遊戱(유희) 또는 즐거운 놀이를 하면서 살다 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란 생각이다. 마치 삶 전체를 초등학교 시절의 즐거웠던 逍風(소풍)놀이처럼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삶이라 여긴다.
莊子(장자)에 보면 逍遙遊(소요유)편이 있는데 이는 삶을 소풍놀이처럼 받아들이란 얘기이다.
이어서 주어진 삶의 시간을 어떤 놀이를 하면서 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만 남게 되는데 답은 아주 간단하다. 저마다 즐거운 놀이를 찾아서 하면 된다.
놀이는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라서
즐거운 놀이는 사람마다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리고 놀이에 따라 들어가는 비용과 즐거움의 크기, 소요 시간과 리스크도 다를 것이다. 그러니 그 또한 감안해서 하라는 것이다.
놀이가 저마다 다를 뿐 아니라 때론 사회적 통념과 상치될 때도 있다. 흔한 예를 하나 들어본다.
몇 년 전 인생 선배가 자신은 천박하게도 왕성했던 중장년 시절 여자와의 섹스가 끔찍하리만큼 재미가 있어서 숱하게 바람을 피웠다는 얘기를 내게 털어놓는 것이었다. 돈도 많이 벌었지만 그쪽으로 거의 다 써서 남은 것도 없다는 얘기도 했다.
선배가 여러 여성들과 섹스를 즐기셨다는 것이 천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반 도덕 기준과는 상치되네요, 하지만 그게 그토록 즐거웠다면 된 거 아닙니까. 게다가 그런 와중에 가정까지 지키고 자녀들도 잘 키웠으니 선배님은 성공하신 겁니다, 하고 크게 긍정을 해주었다.
이처럼 어떤 놀이든 상관이 없다. 감당이 되면 되는 일이다. 본인만 즐겁다면 그리고 그로 인한 문제를 감당할 수만 있고 책임질 수 있다면 그 어떤 놀이든 상관이 없다. 물론 여기에도 일정한 한계는 있겠지만 말이다.
또 대부분의 경우 즐거운 놀이 역시 나이에 따라 세월에 따라 조금씩 옮겨간다. 또 그래야만 다양하게 놀 수가 있기도 하다.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또 하나 즐기면서 살려면 준비해두어야 할 마음가짐이 하나 있다.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긴 인생 살다보면 별의 별 고통과 어려움이 당연히 따르기 마련이다. 몸이 아파서 돈이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등등 인생에는 어려운 고비가 있게끔 되어 있다. 하지만 두려워하진 말라는 것이다. 결국 끝내 어떻게든 그런 것들을 극복할 수 있고 또 어떤 어려움도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란 사실이다.
삶을 쉽고 만만하게 대할 일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것 또한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래야만 주어진 삶을 즐길 수가 있게 된다.
삶 자체가 예술인 것이니
독자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깊다면 성경 말씀에 따라 열심히 즐겁게 살면 되는 일이요 그와 정반대로 도박이 즐겁다면 계속 도박을 하다가 패가망신할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그게 감당이 된다면 그 길로 갈 수밖에 더 있겠는가!
생긴 대로 산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저마다 타고난 성향과 환경에 따라 즐거운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를 좇으며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잘 살자, 잘 놀자, 삶을 예술적으로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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