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60년 순환의 시작

 

 

올 해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은 60년 사이클에선 立春(입춘)이자 새로운 시작점이자 사이클 상의 바닥점이다. 입춘이란 한 해의 시작점인 양력 2월4일 경과 같다. 참고로 금년 2024년의 입춘은 오는 2월 4일 오후 5시 19분에 들어오며 실은 그때부터가 甲辰(갑진)년 청룡의 해가 된다.

 

우리 국운이 60년 순환의 바닥이란 말을 했지만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보충 설명을 한다. 운은 바닥일 땐 오히려 상황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진짜 고난은 바닥을 딛고 일어서고자 할 때 찾아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은 초봄부터 초여름 사이가 된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예전에 보릿고개란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때에 해당된다. 우리 국운의 사이클로 치면 2027년부터 날로 어려워져서 2042년까지의 15년 동안이 어려운 고난의 시기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봄이야말로 어려운 시기이다. 봄은 만물이 蘇生(소생)하는 시기, 그런데 소생한다는 것은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니 그게 어디 쉽겠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가 겪을 고난은 2027년부터 2042년까지의 15년이고 그 정점은 2034년이 될 것이니 지금부터 10년 후가 되겠다. 물론 2034년 이후 2042년까지에도 대단히 어렵겠지만 그때엔 나름 악이 생기고 깡이 생겨서 그런대로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엄살 부리지 않게 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여러 차례 얘기해왔듯이 그렇다고 무조건 어렵기만 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 국운의 장기 국운 즉 360년 사이클을 볼 것 같으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360년 장기 국운에서 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우리 대한민국의 360년 장기 국운은 1904년에 시작해서 2264년에 이른다. 1904년으로부터 계산해보면 올 해 2024년은 120년이 경과했음을 알 수 있다. 360년의 1/3에 해당되는 세월이 지난 셈이고 360년을 1년으로 치환할 것 같으면 넉 달이 경과한 시점이 된다.

 

2월 4일의 입춘으로부터 넉 달이 지났으면 6월6일의 芒種(망종)이란 말이 되는데 이제 바야흐로 본격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올 해 2024년부터 60년간, 즉 2084년에 이르는 기간은 장기 국운 상으로 본격적인 여름의 기간, 열에너지가 끓어오르는 기간이 될 것이니 이 기간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과 전진을 거듭해갈 것이라 본다.

 

6월 초에서 8월 초까지의 기간, 빛이 가득하고 열에너지가 들끓는 이 기간을 나 호호당은 “야망의 계절”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계절은 나름 바람직하지 못한 면도 상당하다. 그야말로 능력주의가 강조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측면은 시늉이나 겉치레에 그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북쪽을 열어야만 한다

 

 

이 기간 동안 어쩌면 우리는 북한 문제를 놓고 서해 바다 저편의 중국과 한 판 뜰 가능성도 충분히 엿보인다. 북한을 중국이 끝내 내려놓지 못할 경우 그리고 우리 또한 북한과의 통일이나 하나 됨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니 그렇다.

 

우리는 북쪽이 막혀있는 이상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다.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고 거래를 하고 있지만 지금이 기껏이다. 새로운 출구는 역시 북쪽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우리인 것이다. 북한을 열어야만 만주와 러시아 등을 통해 아시아 대륙의 내부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와 중국이 충돌 코스를 밟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현재 타이완 문제로 중국과 미국이 전쟁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 나 호호당의 판단이다. 미중이 전쟁을 하기엔 경제면에서 너무나도 깊숙하게 얽혀 있어서 불가능하며 게다가 미중 모두 그럴 만한 기백을 가진 인물도 없다. 따라서 전쟁은 없다.

 

반대로 우리로선 북쪽이 막혀있다는 사실은 우리 대한민국, 크게 보면 남북한 우리 겨레의 숨통을 죄는 것과 같다. 북쪽을 뚫지 못하면 우리 대한민국과 한겨레는 장기적으로 서서히 고사할 형국이니 중국이 양보해야 한다. 북쪽 문제는 우리 대한민국의 死活(사활)에 관한 문제라 하겠다.

 

한 가지 다른 가능성이 있긴 하다. 중국이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체제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럴 경우 우리와 중국의 충돌은 평화적으로 해결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다만 중국이 이제 와서 체제 전환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인데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더 희박해 보인다는 게 문제이다.

 

 

2008년에 전망했던 것과 지금의 현실

 

 

예전에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365회에 걸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놓은 코너가 있는데 호호당 독립 페이지, www.hohodang.com 에 가면 김태규의 명리학이란 항목에 올려져 있다. (티스토리에 올리는 작업이 모두 수작업 생고생이라 올리지 않았다.)

 

그 코너의 361회차 “다섯 개의 겨울 설산”이란 글이 있는데 그 속에 보면 장차 우리가 맞이하게 될 다섯 가지의 어려움을 열거하고 있다. 2008년 11월에 향후를 전망한 글인데 이렇게 적혀 있다.

 

- 미국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디플레이션

- 국내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경제 불황

- 중국 경제의 거품 소멸에 따른 문제

- 김정일 이후 북한의 붕괴 등 그에 따른 통일비용

- 우리 산업의 노후화와 수출 경쟁력 저하

 

놀랍게도 다섯 가지 문제점들은 2024년이 된 지금까지 어느 하나도 정리되거나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동산 문제라든가 중국 경제 거품 소멸은 현재 진행 형이다. 게다가 우리 산업의 노후화에 따른 경쟁력 저하는 지금도 맹렬히 진행 중이다. 물론 그 사이에 배터리와 같은 성장사업에서 새로운 발전을 보이고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 오늘에 이르러 저출산과 고령화, 이에 따른 잠재성장률 저하라고 하는 두 가지 혹이 더 붙었다.

 

얼마 전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률이 가장 높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나라의 중년 특히 40대의 소득이 OECD 국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다는 말도 된다. 그렇기에 세대별 양극화가 엄청나게 커졌음을 말해준다.

또 소득이 평균적으로 높은 40대를 들여다볼 것 같으면 그 안에도 엄청난 양극화가 진행 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대기업이나 유수의 IT 기업에 다니는 젊은 층의 소득은 대단히 높아서 나름 럭셔리한 삶을 누리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청장년층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무척 열악하다.

 

그러다 보니 소득 높은 젊은 층은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족으로 인생을 즐기려는 경향이 높아졌고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 층은 결혼을 포기한다. 그러니 저출산이다. 뿐만 아니라 남녀의 성비 불균형으로 인해 장차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 할 스트레스와 문제도 적지 않다.

 

 

저성장 성숙경제

 

 

하지만 이 모두 크게 보면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저성장 국가가 되었고 좋게 말하면 ‘성숙 경제’로 진입한 나라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이제 큰 꿈(Big Dream)을 꾸기가 정말 어려워진 사회가 된 것이다. 연간 성장률이 2% 나오면 호경기, 부진하다 싶으면 1에서 0 % 사이가 되는 성숙경제 말이다. (이웃의 일본이 보여준 모습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본다. 모든 면에서 저성장인데 그간 우리의 많은 것들이 그보다는 훨씬 높은 성장률을 전제로 설정되고 운영되어온 것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에 맞춰 하향 조정되는 과정이 불가피한데 그 과정이 때론 급격하게 나타날 경우 사회적인 충격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급격한 축소조정이 예상되는 분야 그리고 2027년

 

 

우리의 현실 상 그런 급격한 조정이 예상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있으니 부동산 시장과 사교육을 포함한 교육시장이 그렇다. 이 부문에서 급격한 조정이 나타날 경우 자동적으로 그간 끊임없이 늘어난 가계 부채와 기업부채 문제를 동시에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조정이 급격히 대두될 수 있는 시점으로 나 호호당은 2027년, 향후 3년 뒤를 상정하고 있다.

 

새해 벽두의 글인데 이런 얘기들을 하는 게 과연? 싶어서 며칠 망설였다. 그러다 보니 내일이면 10일이 된다. 그래서 역시 글을 올리는 게 더 나은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불편한 독자분이 계시다면 죄송하다는 양해의 말씀도 함께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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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새 해가 탄생했으니

 

  

한 해의 가장 어둔 곳이자 깊은 深淵(심연)인 동지가 지났다. 늙은 해는 깊은 연못에 들어가 죽었고 베이비 해가 태어났다. 이틀 후면 크리스마스인데 서구에선 동지와 크리스마스를 하나로 묶어서 취급한다, 그냥 미드윈터(Midwinter)이고 크리스마스 연휴는 사실상 동지부터 시작된다.

 

중앙아시아의 탱그리 문화에서도 동지를 해가 새롭게 태어난 날이라 해서 날도칸(nardoqan)이라 하는데 여기서 ‘날’은 우리말의 해를 뜻하는 날과 같은 말이다. 그런가 하면 고대 로마에선 農神祭(농신제),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라고 해서 가장 큰 축제 명절이었다.

 

크리스마스하면 예수님이 태어난 날 즉 성탄절이지만 그 역시 동지에 이르러 베이비(baby) 태양이 태어난다고 여기던 오랜 문화적 전통의 연장선에서 생겨났을 뿐이다. (예수님의 진짜 생일은 아무도 모른다.)

 

어제 동지와 오늘을 비교하니 해시간이 1분 더 길다. 일출 시각은 7시 43분으로 같았는데 일몰이 오늘 5시 18분으로 어제보다 1분 더 늦다. (초로 따지면 1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2023년, 내겐 참으로 힘들었던 한 해

 

 

나 호호당에게 2023년은 나름 많이 힘들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60대 중반을 넘으면서 생겨난 허리 디스크와 이석증, 어지럼증, 피부의 이상한 자극 등등 몇 가지 증세로 인한 통증과 스트레스, 여기에 담배 금단 증세까지 더해져서 꽤나 우울하고 힘들게 시간을 보냈다. 간단히 말해서 사는 게 苦役(고역)이었다.

 

참으로 강건하던 내 몸이었고 지칠 줄 모르던 체력이었는데 삽시간에 이렇게 망하다니! 실로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우울하게 지낼 순 없으니 대책을 세워야 했다. (사실 금연한 것도 그 대책 중의 하나였지만 당장은 힘든 게 더 많았다.)

 

 

궁리 끝에 두 가지 방법을 택했으니 

 

 

결국 두 가지 방법을 택했다.

 

하나는 명상 또는 수련이라 부르는 것, 국내에선 단전호흡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것의 기본은 道敎(도교)의 內術(내단술)인데 이를 수련하기로 했다.

 

또 하나는 겨울이 되어 아파트 단지 외곽을 돌아가면서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일이 그것이다. 시작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20일 경의 霜降(상강) 때부터였다. 단지 안의 고양이들은 캣맘들이 있어서 괜찮다. 그래서 새들에게만 내년 초여름 5월 小滿(소만)까지 6개월간 모이를 주기로 했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해 모이를 주지 말라고 하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겨울엔 새들 먹을 것이 흔하지 않다. 

 

기본은 보리쌀과 쌀, 해바라기 씨앗, 이렇게 3가지를 섞어서 준다. 여기에 먹다 남은 마른 음식이 있으면 함께 넣는다. 대략 2.5 킬로그램 정도의 분량을 들고 나가서 뿌려준다. 하루 비용이 대략 1만원이 조금 안 되는 것으로 계산하는데 담배를 끊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갈음이 된다.

 

매일 해가 뜰 무렵에 나가서 모이를 주었는데 최근 강추위 탓에 아침 10시에서 정오 사이에 주는 것으로 루틴을 변경했다. 그런데 이게 왜 우울증에 대한 방책인가? 하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뭔가를 먹이고 돌보는 일은 즐겁고 우울한 삶에 큰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새들은 기억력이 좋다, 동네 까치나 까마귀는 물론이고 비둘기들, 그리고 이름 모르는 여러 새들까지 해서 모두들 모이 주는 나 호호당을 기억하고 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까치 한 마리가 망을 보다가 비닐 지퍼백에서 모이를 한줌 집어서 정해진 장소에 내려놓으면 깍-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치고 그러면 순식간에 까치들이 날아든다. 그들은 내가 어디에 모이를 놓아주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후 비둘기가 날아들고 거의 동시에 숲속 가지에서 후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참새와 박새, 그리고 이름 모르는 새들이 날아든다. 까마귀도 온다.

 

아파트 외곽 산책길로 해서 1.5 킬로미터에 걸쳐 모이를 뿌려주면서 돌아온다. 그러면 수백 마리의 새들이 연신 소리를 지르며 내려앉아선 열심히 모이를 쪼아댄다. 그 바람에 나 호호당은 우면동 아파트 단지의 새들 양아버지가 되었다. 흐뭇하다, 내가 너희들 애비다, 많이 먹어라, 내 새끼들아!

 

수련은 내 몸을 養生(양생)하는 방법이지만 새들 모이 주는 것 또한 나 자신을 넘어선 생명 전체의 관점에서 그를 더하고 늘리는 방법이니 그야말로 좋은 양생법이라 여긴다.

 

2024년이면 세는 나이로 일흔, 즉 70이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동갑내기인 집사람 말로는 끔찍한 일이라고 한다. 어쩌다가 그간 뭘 했다고 벌써 70이 되었을까?

 

 

이젠 진짜 여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며칠 전 주중에 아주 추운 날 대학 과동기 모임을 했다. 한 친구가 말하길 우리 나이에서 기대수명은 82세라는 것이었다. 현재 만으로 68-69세 정도니까 13-14년 정도가 餘生(여생)이란 얘기였다.

 

살아봐서 익히 알고 있지만 10년 세월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러니 그날 동창회 모임에 나온 모든 멤버들은 이미 날 받아놓은 거나 다름이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 호호당 역시 말로는 운세가 받쳐주고 있으니 아흔까지 살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지만 사실 모르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몇 살까지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 갈 수 있느냐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소식을 들어 알게 되었으니 불교학교의 훌륭한 학자이신 김성철 교수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타계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 양반 아직 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면서 생일을 검색했더니 1957년생, 나 호호당보다 2년 후배인 셈인데 참 일찍 떠났구나 싶다.

 

생년월일을 검색해보니 1957년 11월 8일이라 되어 있다. 그 나이면 아마도 음력일 것 같아서 사주를 뽑아보니 그럴 것도 같다. 일단 심장 기능이 좀 약해 보인다, 그리고 2014년이 입춘이란 점이다. 그러니 올 해는 춘분 직후이니 능히 갈 법도 하고 또 심장마비도 납득이 간다.

 

아쉽긴 하지만 몸 고생 많이 하지 않고 순간에 떠났으니 한 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선생, 잘 가시오! 윤회를 부정하면 불교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주장하신 분이니 다시 좋은 곳에서 태어났겠지요.

 

 

그럼에도 새로운 여정을 기대하는 호호당

 

 

사실 나 호호당은 2024년에 대해서 적지 않은 기대를 품고 있다.

 

1994년 4월부터 시작된 오랜 방황의 여정이 이제 내년 4월이면 30년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이제 또 다른 즐거운 여정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을 품어본다.

 

그리고 새 해는 이미 동지 다음날인 오늘부터 이미 준비(?) 또는 시작되고 있다.

 

부디 독자님들과 독자님들의 가정에 안녕과 행복, 새로운 희망이 가득차기를 바라면서 연말 인사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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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보낸다는 것

 

 

이제 한 해가 다 갔다. 2023 癸卯(계묘)년은 곧 과거의 年表(연표)가 될 것이고 2024 甲辰(갑진)년이 진행형이 될 참이다.

 

젊어선 한 해가 간다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한 해가 갔다? 뭐 그게 어떻다고, 또 새해가 올 거 아냐? 그냥 이어져가는 거지 정도로만 치부했다.

 

중년이 되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게 되었다.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들어가네, 중년이 되면 뭐 좀 좋은 일이 있을 줄 알았더니 현실은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허송세월했구나 하는 자괴감 같은 심정도 들었다. 또 한 편으론 뭐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인생 다 그렇지 하면서 드라이한 생각, 마른 감정도 가져보았다.

 

 

삶의 햇수가 좀 되다 보니 

 

 

이제 나 호호당 내년이면 세는 나이로 일흔, 즉 칠십이다. 옛날엔 70까지 사는 일이 드물다 해서 古來稀(고래희)라 할 정도였으니 일단 長壽(장수)한 셈이라 하겠으나 오늘의 기준에서 얘기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냥 좀 나이가 있는 아저씨 정도(?).

 

하지만 내 스스로 느끼기로 이젠 적지 아니 살았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가령 호호당이 죽었다 하자, 그럴 것 같으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저 양반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났네, 아쉽다 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어디까지나 평균의 개념이 적용되는 법이니 90까지 살았다 하면 장수했다고 할 것이고 80 중반에 운명하셨다 하면 살만큼 살다 가셨다 할 것이며 70 중반이면 좀 빠르다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시대가 가니 사람도 떠나네 

 

 

글머리에서부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연말이 가까울 무렵 갑자기 생각하지 않은 訃音(부음)들이 많아서이다. 얼마 전 20세기 후반의 글로벌 세계를 만들어낸 주요 인물 중의 한 사람인 헨리 키신저 박사가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키신저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0년대 후반 중국을 개방시켜서 미국 쪽으로 끌어들인 중미동맹을 성사시켰고 그를 통해 1991년말 소련의 붕괴를 유도해내는 커다란 업적을 만들어낸 핵심 당사자였다.

 

그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아 이제 세월이 가도 많이 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글로벌화란 것을 들여다보면 결국 미국이 중국을 끌어들인 동맹체제로부터 시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미중 관계는 삐걱대면서 또 다시 새로운 관계 설정을 향해 움직여가고 있으니 달라진 세상인 것이고 이에 옛 사람인 키신저는 떠났다.

 

그런가 하면 나 호호당의 청춘 시절 국내에서도 엄청난 히트를 쳤던 미국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의 클래식인 “러브 스토리”의 남자주인공 “라이언 오닐”이 8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러브 스토리, 에릭 시걸이란 작가가 쓴 소설이었는데 히트를 치자마자 즉각 영화로 만들어져서 또 다시 초대박이 난 작품이다. 영화 제작비의 무려 62배에 달하는 수익을 만들었던 영화인데 그도 그럴 것이 두 대학생 남녀의 순애보를 그린 영화인 탓에 특별히 들어간 비용이 없는 저렴한 영화였다, 그런데 엄청나게 흥행했으니 초대박이었다.

 

라이언 오닐이 죽었으니 순애보의 러브 스토리도 끝이 났다. 이 또한 한 시대가 지나갔음을 알리고 있다.

 

글로벌 구도를 스케치했던 희대의 전략가 키신저가 죽었고 청순한 사랑의 대명사였던 러브 스토리의 라이언 오닐이 죽었으니 마치 나 호호당이 살았던 시대가 이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해서 이제 나 호호당도 멀지 않아 옛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약간 서운한 감정.

 

 

자승스님, 그렇게 가시면 어떡합니까? 

 

 

그런가 하면 진짜로 충격적인 일은 자승스님의 돌연한 타계이다.

 

종단 쪽에선 소신공양으로 정리하고 있으나 그게 참 어이가 없다. 그 것의 옮고 그름을 떠나서 요사채에 휘발유를 두르고 불을 붙여서 목숨을 끊었으니 무섭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저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반야심경에선 不生不滅(불생불멸)이라 해서 생사란 원래 없다는 식의 말을 하고 있지만 현실의 세상은 어딜 가나 죽기 아니면 살기의 아귀다툼과 이전투구란 식으로 해석이 되니 처절한 심정마저 든다. 많은 생각이 들지만 감히 판단하기도 어렵고 그저 며칠간 먹먹할 따름이다.

 

왜 그랬을까? 궁금해서 생년월일을 찾아보니 나무위키에 1954년 4월 23일이라 되어 있고 춘천시 출생이라 되어 있다. 그 연도면 음력일 가능성이 높아서 그렇게 검색해보니 甲午(갑오)년 己巳(기사)월 辛巳(신사)일이 된다.

 

음력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2001년이 입추였을 것이니 秋分(추분)인 2009년에 총무원장에 취임했고 또 재선되어 2017년까지 재임한 것이 된다. 역대 총무원장 중에서 최고 실세였던 분이 갑자기 무슨 사유로 저처럼 가야 했을까? 그저 올해 2023년은 자승 스님의 운세에 있어 冬至(동지)인 것으로 판단된다.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세상과 인연을 끊은 것인가? 그간 무엇을 구했으며 이제 와서 달리 구할 것이 없다는 저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게다가 스님의 죽음을 둘러싸고 정치 쪽 특히 좌파진영의 날선 비판도 많다. 그간 잘 몰랐지만 스님이 평소 그쪽과는 친하지 않았던 모양인데 아무튼 우리 사회는 종교계에도 날카로운 진영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생사 없는 곳이 없다는 스님의 말이 실감이 간다.

 

그런데 스님을 다비했더니 푸른 옥구슬과 같은 사리가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고 한다. 나무아미타불!

 

 

삶은 거친 압력 속에 놓여있기에 

 

 

하지만 자승스님의 선택은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에겐 여전히 아쉽고 실망스러운 바가 있다. 우리들이 기독교든 불교든 그 어떤 종교에서든 기대하는 것은 과학적 합리성이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인 까닭이다. 더불어서 최근 우리 사회의 종교계 인사들이나 종단이 정치적 좌우 이념의 싸움터가 되고 있는 것 역시 대단히 실망스럽다.

 

종교의 근원적 역할은 우리들에게 위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왜냐면 삶의 현장은 늘 거친 압력 즉 暴壓(폭압)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삶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그를 기반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영위하려면 우리들은 늘 다양한 압력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거친 삶의 현장을 지키고 또 이어가려면 다소 근거가 희박하더라도 그 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 희망을 지녀야만 한다. 동시에 우리 서로가 힘들 때마다 위안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 즉 사랑이 있어야만 삶의 거친 압력으로부터 견디고 또 다시 내일을 기약할 수가 있다.

 

 

해를 보낸다는 말, 다시 새겨보자. 

 

 

헌 해를 보낸다는 말, 그 말 속에는 묵은해를 보내면서 맞이했던 모든 어려운 일들과 좌절된 희망. 또 그로 인한 상처들도 함께 실려 가기를 기원하는 바람이 깃들어있다.

 

그래야만 새해에는 또 다시 말끔하게 언제 힘들고 아픈 일이 있었을까 싶은 멀쩡한 표정과 자세로 새로운 한 해의 기원과 희망을 다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만 

 

 

올 한 해는 다를 거야, 아니 달라야 해! 하는 다짐과 기원 말이다. 물론 그 다짐과 기원은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또 다시 변색되고 빛이 바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늘 어떤 지점을 기점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품어보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어려선 잘 모르겠지만 철이 들고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한 번 주어진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뼛속 깊이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삶의 경륜이 생기고 쌓이다 보면 막연하지만 미래에 대해 희망하고 기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닌 가장 강한 힘이라는 사실, 아울러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이 유지되는 원동력이란 것을 알게 된다.

 

올 한 해 나 호호당으로선 여러모로 힘든 해였다. 건강 문제로 인해 담배를 끊었는데 그 금단 증세가 실로 엄청났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의욕이 저하되면서 심한 우울증도 함께 왔다. 50년을 피워온 담배였으니 그걸 그만 두는 것이 결코 만만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껏 금연을 유지하고 있고 아마도 끝내 금연에 성공할 거란 예상을 해본다.

 

올 겨울 보내고 내년 봄이면 다시 상담 사무실도 낼 생각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글도 자주 쓰고 그림도 열심히 그려볼 생각이다. 나 호호당 또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 하고 또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삶이 이어지는 한 말이다.

 

 

독자님들에게 감사 인사 드리면서 

 

 

내년에는 독자님들과 그 주변 그리고 가정에 좋은 일이 이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송년의 인사를 마친다. 올 한 해 많은 점에서 부진했지만 그럼에도 독자님들의 지지와 성원, 메일을 통해 보내오는 응원의 메시지들이 있었다, 그저 감사드리는 마음뿐이다.

 

운세 주기가 다르다 보니 생기는 오해

 

 

며칠 전 오래 전 잘 알고 지내던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외손주 일로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년 봄까진 사무실도 폐쇄하고 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가까운 사이였기에 기꺼이 상담해 드리겠다고 답했다.

 

양재역 근처의 커피 집에서 만났다. 몇 마디 들어보니 바로 판단이 섰다.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사정이었겠으나 나로선 너무나도 많이 접해본 아주 흔한 상담 케이스였다.

 

손주의 아버지가 되는 사위는 대기업 간부, 사회적으론 성공 가도를 달려가고 있지만 집에선 자녀들에게 아주 엄한 아버지, 아들 녀석이 말을 안 듣고 공부도 하지 않는다고 수시로 심한 말과 함께 때론 폭력도 행사하고 있었다.

 

외손주의 어머니 즉 지인의 따님은 그런 남편의 심한 행동에는 적극 반대하고 있지만 대신 아들에 대해 깨알같이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외손주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반항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아예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방안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일종의 농성을 하기 시작했다. 칼을 들고 들어가서 혹시라도 끌어내려고 하면 무슨 일이 날 지 모른다고 부모를 위협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아이의 생년월일시를 보니 2008년생이었고 지금은 중3이었는데 운세를 보니 2020 庚子(경자)년이 입춘 바닥, 따라서 지금은 지금 한창 어렵고 힘든 때, 간단히 말해서 바닥을 기고 있었다.

 

학교에서 학업 성적은 물론이고 왕따 당하는 일도 제법 되는 외손주는 이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싫어져버린 것이다. 부모들은 이러다가 아이를 완전 망칠 것 같은 걱정이 들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내버려 두면 되는 일인데

 

 

어쩌면 좋겠냐고 묻는 지인의 물음에 답을 했다.

 

“간단합니다. 버리면 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학교에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아니요 성적 따윈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이 하자는 대로 내버려두면 가장 좋습니다. 용돈을 달라고 하면 물론 적당히 주어야 하고요. 그렇지 않고 강제로 억지로 푸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정말 그건 모를 뿐 더러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남자는 상처를 크게 받으면 일단 자신의 동굴로 들어가서 다 나을 때까지 나오지 않으려 하는 법, 그러니 동굴 밖에서 기다려주면 되는 일이라고 얘기해주었다.

 

이런 상황은 굉장히 흔하다. 그런데 억지로 문제를 해결하려들면 정말이지 부모 자식 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남기고 悲劇(비극)으로 끝나는 수도 대단히 많다.

 

그 아이, 그냥 내버려두면 몇 년 지나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잘 살아보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면 절로 잘 살아갈 수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상실도 크다. 학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바람에 사회에 진출할 때 상당히 마이너스로 작용하겠지만 큰 눈에서 보면 인생 살아가는 데 있어 그게 결정적인 것은 절대 아니란 사실이다. 오히려 그런 요소가 약이 되어 나중에 더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점은 저마다 각자의 운세 사이클이 다르다는 점이다. 가령 아버지는 어려서 고생하면서 열심히 노력했고 그 바람에 중년 이후 어느 정도 성취를 누린다. 하지만 자녀는 어려서부터 운이 계속 하락해서 20대 무렵에 바닥을 치게 되어 이른바 ‘루저(loser)’로 지낸다. 하지만 그 또한 나중에 보면 그런 찌질이 루저들이 중년 이후 만년에 이르기까지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기다려주어야 될 때가 더 많아서 

 

 

따라서 이런 케이스에 있어 일단 부모 쪽에서 먼저 자녀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럴 경우 고비를 잘 넘길 수 있고 훗날 자녀가 잘 성장해서 부모의 은혜를 두고두고 고마워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경우 부모 자식 사이가 원수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참으로 허다하다. 상담해오는 과정에서 실로 많이 경험했다, 나 호호당은.

 

물론 이처럼 사람마다의 운세 사이클을 알 수 있다면 살아감에 있어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운세 사이클을 몰라도 실은 크게 상관이 없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가까운 사람 또는 자녀가 상대적으로 부진하고 떨어진다 싶으면 타고난 재능이 떨어지는 까닭도 있겠으나 운세가 부진하면 저렇다는데 하는 식으로 이해해고 양해해준다면 그리고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있다면 결국 보람이 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저마다 욕심이 앞서서 조금 모자란다 싶으면 다그치고 압박하면서 서로 간에 감정만 상하게 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인 것 같아서 안타깝다.

 

 

기다려주는 것, 성숙한 자의 사랑

 

 

소중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어렵다면 같이 걱정도 하고 공감도 해가면서 잘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이런 것을 성숙한 사랑이라고 한다.

 

입동이라 서리 무성하고 

 

오늘 11월 8일 새벽 1시 21분으로서 立冬(입동)절을 맞이했다. 어제부터 기온이 훅 내려서 옷을 입고 워킹에 나선 7시20분, 기온은 3도, 그래도 어제 하루 동안 적응이 되었는지 그다지 춥지 않았다. 해가 동쪽에서 이제 막 떠오르고 있었고 새들이 먹이활동을 열심히 시작하고 있었다.

 

霜降(상강) 이후부터 아침 워킹 때마다 새들 먹을 것을 챙겨준다, 이제 굶주림의 기간이 시작되었으니. 걷다 보면 팻말에 ‘비둘기 모이를 주지 말라, 그게 오히려 새들에게도 더 좋다’는 식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개체수 조절 차원에서 물론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나는 주고파서 준다, 어쩌라고.

 

산책길 아래의 저습지 풀밭 위로 서리가 허옇게 깔려있었는데 햇볕이 비쳐오자 빠르게 녹아서 이슬이 되고 있었다. 그래 아직은 된서리가 아니라 무서리의 계절.

 

立冬(입동)이란 단어에 겨울 冬(동)자가 들어가니 겨울이 아닌가 싶겠지만 아직 겨울보다는 늦가을 느낌이 들 것이다. 저 멀리 지평선 쪽에서 겨울의 기운이 이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는 의미의 입동이니 그렇다. 그 겨울 기운이 앞으로 보름 지나 小雪(소설), 즉 11월 22일이 되면 바야흐로 겨울다운 겨울로 접어든다. 이제 서둘러서 겨울옷을 꺼내어 점검해야 할 때.

 

 

만물은 입동에 이르러 가장 튼실하다

 

 

입동, 이 무렵이야말로 겉보기와는 달리 살아있는 모든 것이 가장 부유하고 튼실할 때이다.

 

낙엽 우수수 지고 날이 차가워지니 쓸쓸한 기분이 앞서서 그렇지 사실 영양학적으로 따지면 지금이 가장 實(실)할 때란 사실. 물론 그렇다, 낙엽 길에 가득 뒹굴고 차가운 바람 휙-하고 불어오면 그야말로 罷場(파장) 분위기가 맞다. 하지만 그건 이제 생산이 끝났을 때의 분위기, 다시 말하면 이제 그간 신나게 뜨겁게 즐기던 파티가 끝난 뒤의 허전함 같은 것이다.

 

나무의 경우를 보자.

 

그간 잎사귀를 통해 광합성을 많이 했고 그를 통해 많이 자랐다. 그러니 이제 잎사귀로부터 일종의 영양분이라 할 수 있는 엽록소까지 깨끗이 다 몸 안으로 회수해 들인 뒤 떨어뜨린다. 아래에선 그간 땅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던 잔뿌리들도 모조리 끊어버린다. 이제 곧 땅이 얼 것이니 잔뿌리를 통해 물기가 들어오면 얼어 죽을 수 있으니 밀봉해버린다. 이제 생산은 끝이 났고 따라서 나름 가장 부유해진 나무는 그간에 축적한 영양분을 가지고 겨울을 나면 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 한해살이 벌레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해놓고 죽었을 것이고 여러해살이 동물들은 그간 영양분을 최대한 축적해서 토실하고 튼실하다. 겨울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사람도 실은 마찬가지이다. 한해 농사가 이맘때면 다 끝이 나서 창고에 곡식이 가득할 것이고 그것으로서 내년 여름까지 지낼 양식을 마련했을 것이니 입동 무렵이야말로 농부가 가장 부유한 때이다.

 

 

우리 국운에 적용해보면

 

 

그렇다면 이제 입동에 만물이 가장 부유하고 튼실하다는 이치를 확대 적용해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60년 주기 국운에 있어 입동은 2009년이었다. 따라서 2009년을 전후한 5년간, 2007-2012년간이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부유했던 때였다.

 

그 무렵 우리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강국과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으며 2010년의 서울 G20 정상회의와 2012년의 핵안보정상회의가 우리의 높아진 위상을 말해주는 좋은 행사였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 우리 경제가 비교적 쉽게 회복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 무렵 우리 기업들의 높은 기술력이 받쳐주었기 때문이고 이에 중국 시장에서 크게 재미를 볼 수 있었다.

 

나라의 부강함을 말할 때 흔히 1인당 GDP를 얘기하지만 사실 그건 하나의 지표일 뿐이고 그냥 2009년을 중심으로 하는 2007-2012년 사이에 우리 경제가 가장 부강했었다고 보면 절대 틀림이 없다.

 

2009년에 가장 부강하고 부유했으니 그로부터 30년, 즉 60년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 이르면 또 한 차례 우리 경제는 가장 빈곤한 때를 맞이할 것이니 때는 2039년이다. (물론 이 때 빈곤해진다고 해서 우리가 과거와 같이 빈한하고 가진 것 없던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2024년부터 우리 경제는 내리막을 갈 것이고 

 

 

그러니 내년 2024년, 우리 국운의 새로운 60년 주기가 시작되는 立春(입춘)부터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가난해지고 어려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2009년부터 30년간의 내리막길에서 내년은 그 중간에 해당되기에 어쨌거나 2009년부터 15년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면 이제부터 15년간은 고난과 새로운 도전의 시기가 될 것이란 얘기이다.

 

우리 경제의 근원적인 문제점은 우리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상품을 수출하고 그 액수만큼 수입을 해와야만 현 상황을 유지해갈 수 있는 체제, 즉 외부환경의 변화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최근 대두된 새로운 상황, 미국이 반도체 기술을 통제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화가 멈칫거리고 블록화되는 상황은 우리 경제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구감소로 인한 문제가 우리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내수 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를 맞이할 것이고 그에 따라 성장률 또는 잠재성장률 또한 제로 또는 마이너스로 들어갈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와 경제를 보면 겉으로야 그런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속으로는 상당한 스트레스와 불안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가계대출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국가부채 또한 저번 문재인 정부 시절 엄청나게 늘려놓았기에 훗날 반드시 커다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 없다.

 

게다가 수출 또한 예전만큼 흑자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에 안팎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유튜브를 보면 증시나 경제 부동산에 관한 비관적인 전망도 상당히 많고 또 조회 수도 많이 나온다. 각자의 불안한 마음을 좀 더 확인시켜주는 것, 즉 그래 맞아, 전문가들도 저렇게 생각하잖아, 그러니 어려워질 거야! 하는 것이다.

 

 

2027년 여름, 우리 경제에 커다란 충격이 찾아올 것이니 

 

 

그래서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어려워지는 시기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한다. 아직은 아니고 2027년 4월부터 기미가 나타나서 7-8월 이후가 되면 우리 경제에 한 차례 큰 충격이 찾아들 것이다. 아직 몇 년 더 남은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때 까지는 아무런 일이 없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고 서서히 지속적으로 어려워져갈 것이란 얘기이다.

 

오늘 글은 어제부터 쓰기 시작해서 오늘 9일 점심 무렵에 마무리했다. 금연으로 인한 금단증세로 글 쓰는 게 절대 쉽지가 않다, 어서 편해져야 할 터인데 말이다.

이제 운명에 대해 예전만큼의 관심과 흥취는 없지만 그래도...  

 

이제 나 호호당은 운과 명 즉 운명이란 것에 대해 예전처럼 호기심이 많지 않다. 웹(web)이란 것이 생겨난 이래 정보는 넘쳐났고 그 덕택에 상담만이 아니라 웹상의 무수한 자료들을 통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연구해보았고 그 결과 알만큼 알고 있으며 반대로 어떤 일정한 한계, 내 혼자만의 머리와 노력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기에 그렇다.

 

물론 나 호호당이 운과 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이나 상상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머진 또 다른 이들이 더 연구해서 알아내리라 여긴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보다가 다시 한 번 운명의 묘한 이치를 절감케 해주는 흥미로운 사례를 만났다. 야, 이거 참 신박하네! 이래서 운명에 대한 연구를 그만 둘 수가 없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운이 한창 좋을 때 황액을 당했지만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어느 젊은 검사가 운전 중에 마피아의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마피아들 입장에서 협박이 통하지 않자 일종의 처형을 단행한 것이다.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 1990년 9월 21일이었는데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2020년 12월 1일자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복자로서 승인했다.

 

이로서 검사는 사후 30년 만에 가톨릭교회 準(준)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검사의 이름은 로자리오 라바티노(Rosario Livatino), 38세의 나이였다. 생일을 살펴서 운세 흐름을 확인해보았다.

 

1952년 10월 3일생이고 생시는 알려져 있지 않다. 壬辰(임진)년 己酉(기유)월 壬午(임오)일이다. 생시를 모르는 까닭에 확신할 순 없지만 이 검사의 입추는 1982년이라 본다. 따라서 1990년은 60년 순환에 있어 秋分(추분)의 때였다.

 

한 해의 순환에 있어 9월 20일 경의 추분은 가을 수확이 시작되는 때, 따라서 추분의 운 또한 이제 바야흐로 모든 면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하는 때이건만 이 좋은 운에 라바티노 검사는 마피아들에게 졸지에 살해당하면서 비명횡사하는 厄(액)을 당했다.

 

하지만 이 대목이야말로 나 호호당으로 하여금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게 만들었고 또 글을 쓰게 만들었다.

 

 

세상이치와 셈법이 절대 허술하지 않아서 

 

 

사람들을 마피아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용감하게 수사를 지휘하던 정의의 검사가 한창 좋은 운에 비명횡사를 했으니 그간의 노력은 도대체 무엇이며 나아가서 正義(정의)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에 불과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말이지 이런 대목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정을 떠나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것일까? 선악이란 그저 헛된 관념인 걸까? 어쨌거나 돈을 벌고 성공만 하면 되는 것일까? 하는 질문 말이다.

 

학교를 다니는 청년 시절까지는 도덕과 선악, 정의와 불의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사회에 진출하고 현실을 경험하고 또 그 속에서 시달리다 보면 그런 문제는 점차 별 것이 아니란 생각과 회의도 들기 마련이다. 심지어 어쨌거나 먼저 먹고 잘 먹는 놈이 장땡! 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현실의 세계는 ‘셈법’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고 기준도 애매하다. 객관적인 셈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같다.

하지만 나 호호당이 운명을 오래 연구하면서 알게 되고 느껴서 절감하게 된 바, 세상의 가치와 셈법은 절대 허술하지 않다는 점이다.

 

 

죽어서 부활한 라바티노 검사

 

 

사람의 운세는 60년 순환에 있어 秋分(추분)부터 小雪(소설)까지 10년간이 최전성기이고 그간에 성취한 것이 쌓이고 누적되다 보면 冬至(동지)의 운까지 15년간 무난하게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로사리오 라바티노 검사는 그 어떤 영광도 누리지 못하고 망각되어 질 법도 했으나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은 법, 지역 가톨릭 교회 주교가 나서서 그의 의로운 행동에 대한 자료들을 적극 수집했고 이에 마침내 당시 교황이던 요한 바오르 2세로부터 “정의의 순교자”란 평을 받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2020년에 와서 마침내 교황으로부터 福者(복자)로서 시복을 받게 되었다. 이를테면 라바티노 검사는 죽은 지 30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그가 피격당한 것은 날은 1990년 9월 추분의 운이었고 시복이 승인된 것은 2020년 12월이었으니 이는 라바티노에게 있어 봄이 되어 다시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의 운이었다. 해가 짧아졌다가 새해가 되어 다시 길어지는 자연의 순환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라바티노 검사가 세상을 떠난 뒤 시칠리아 현지에선 분위기가 많이 변해서 오늘날에 이르러 시칠리아 마피아는 그 세력과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 해외 관광객이 많이 찾다 보니 이탈리아와 또 지역 정부도 마피아를 몰아내는 끈질긴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세상의 셈법은 엉성한 듯 하나 정확하다는 얘기

 

 

이처럼 세상은 공이 있으면 포상을 받을 것이요 덕을 베풀면 언젠가 돌려받기 마련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우리가 세간에 시달리며 살다 보면 회의가 들기 마련이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간의 상담과 연구를 통해 검증해왔기에 이런 글을 올린다.

 

넷플릭스에서 “믿음의 미스터리”란 다큐 4회차 내용에서 라바티노 검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곧 변화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은 내년 2024년이 立春(입춘) 바닥이자 새로운 순환의 시작점이다.

 

방금 ‘새로운 순환’이란 말을 했다. 하지만 선뜻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늘 아침이 오고 또 저녁을 맞이한다, 그런 까닭에 으레 아침과 저녁이 되풀이 반복되는 줄로 여긴다. 하루하루의 일상은 대개의 경우 별다른 변화가 없이 흘러가기에 우린 그걸 日常(일상)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변화가 없이 그냥 흘러가기에 그렇게 느낀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긴 시간을 놓고 보면 하루하루는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어느새 누적된 그 무엇이 있었기에 커다란 차이를 느끼게 된다. 세월 속에서 늘 일정한 변화가 누적되어서만이 아니라 어떨 땐 크게 변화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런저런 변화가 쌓이는 가운데 긴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전혀 예상치 않았던 낯선 환경을 맞이하기도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이 그래서 그렇다.

 

다시 돌아가서 새로운 순환이란 결국 헌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이고 따라서 현 상태 그대로는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냥 이어갈 수 없다는 말,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면 이렇다. 삼성과 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만으로 현재의 우리 경제를 유지해갈 수 없다는 말이고 현대차의 수출만으로 이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배터리 시장은 당초의 전망만큼 그렇게 고속성장만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고 기존의 조선이나 화학 기술만으로 현재의 우리 경제 수준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없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뿐만 아니라 현 우리의 정치 체제와 구도 또한 이미 우리의 현실에 부합되지 않고 있으니 변화하게 될 것은 물론이다.

 

우리를 에워싼 외부환경도 조만간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수출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대 중국 수출로 재미를 보던 시절도 이미 지나갔고 새롭게 떠오르는 유망한 시장 또한 잘 보이지가 않는다.

 

 

목하 우리 국운의 갈수기가 진행 중인지라 

 

 

우리 국운은 2012년을 기점으로 30년에 걸친 渴水期(갈수기)에 들어갔다.

 

갈수기, 가뭄 등의 원인으로 하천 따위의 물이 한 해 중 가장 적어지는 시기인데 여기에서 물이란 발전과 성장의 모멘텀을 뜻한다.

 

그 갈수기의 최정점은 2012년 4월부터 15년이 흐른 2027년 3월말 경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지속적으로 마르고 쪼그라드는 시기란 뜻이다. 그렇기에 우리 국민들 모두 2027년 4월 무렵이 되면 더 이상 이대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어지간하면 그냥 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그 때가 되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지하고 인정하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2027년 4월은 새로운 우리 국운 60년 순환에 있어 雨水(우수)가 된다. 세상사 아무리 힘들어도 죽은 란 법은 없다고 하듯이 그 무렵이면 겨울 끝무렵이라 解冬(해동)의 단비가 어느 정도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비를 가지고선 고 오랜 가뭄을 끝낼 수야 없는 법, 좀 더 본격적으로 활로를 찾아 나서야 하겠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작은 기틀이라도 변화와 발전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면 최선을 다해 붙잡아야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털어놓고 가야할 옛 일이 하나 있어 얘기한다. 2027년으로부터 60년 전인 1967년 무렵 국운의 雨水(우수)에 우리가 돌파구를 찾았던 계기는 당시 베트남전에 우리 장병들을 대거 증원해서 투입하고 그로서 금쪽같았던 달러벌이에 나섰으니 그게 실은 우수의 단비였다는 얘기이다.

 

훗날 베트남전 파병은 나름 진보 측 정치인들과 민주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젊은 청년들의 피를 팔아서 달러벌이를 했으니 그게 옳은 일이냐? 하면서. 하지만 당시 우리 입장에서 베트남전 파병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또 그를 통해 해외 수출의 길을 튼 것은 사실상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니 이제 오는 2027년 4월, 국운의 雨水(우수) 운에는 다소 어렵고 구차하더라도 어금니 꽉 다물고 또 다시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 본다. 아무리 그래도 60년전 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의 어려움은 2027년으로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다시 15년간에 걸친 어려운 길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2042년이 되어야만 그런대로 또 다시 활기가 돌아오고 모두가 그런대로 희망을 품어볼 수 있는 시기를 맞이할 것이니 말이다.

 

당장은 어렵고 요원한 얘기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방식의 남북한 통일 또는 통합을 이루어야만 살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북한이 열려야만 기운이 움직여서 북한 쪽으로 돈이 들어가고 정보와 기술이 들어가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장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과제라 하겠으나 어쩌면 2042년에서 2047년 사이에 그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해보고 있다.

 

 

긴 시간 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에 대해

 

 

꽤 긴 시간 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담배를 끊은 뒤 오는 금단증세란 생각을 한다.

 

코로나 이후 2년간 몸이 불편했던 까닭에 나름 결심을 하고 생활의 루틴을 전폭적으로 바꾸었다. 담배를 끊었고 밤 12시 이전에 자고 7시 이전에 일어난다. 일어나서는 바로 산책을 나가서 40분 정도 걷고 들어온다. 그야말로 건강생활이다.

 

하지만 즐겁다기보다는 고통스럽다. 담배 금단증세 때문이다.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그 바람에 올 해는 그림 한 장 그리지 못했고 블로그에 올리는 글 한 편도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해서 툭 하면 도중에 그만 두곤 한다. 독서 또한 거의 하지 못 한다. 농담이 아니라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과 시간들이 무의미하고 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무려 49년간이나 가까이했던 담배와 헤어졌으니 喪失(상실)의 고통이 그럴 법도 하겠거니 싶다. 그저 언젠가는 몸이 담배를 망각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눈앞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올 한 해는 나 호호당에게 본의 아닌 안식년이 되었다. 당초 자연순환운명학의 개론을 쓴다는 명분으로 상담을 당분간 중단했고 사무실도 닫았다. 책을 얼추 다 썼는데 금단 증세로 인해 마무리를 미처 못 하고 있다.

 

참 어이가 없다, 나 호호당이 담배를 끊는 날이 오다니 그리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경우를 겪게 되다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담배 대신에 얻고 있는 가장 큰 기쁨이 아침 산책이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걷는 즐거움이 금연의 고통을 어느 정도 달래주고 있음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 가을은 내게 있어서만큼은 참으로 특별하다. 직장을 그만 둔 뒤 30년간 늘 아침 10시나 11시나 되어야 일어났던 터라 가을아침을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올 가을은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걷고 있으니 가을 아침을 만끽하고 있다.

 

 

증시하락이 심상치 않지만 

 

 

그나저나 증시 하락이 꽤나 심각해 보인다. 어쩌면 장기 대세 하락으로 접어드는 初入(초입)일 가능성도 있다. 증시야말로 우리 경제의 활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인데 상태가 양호하지가 않다.

 

혹시나 해서 얘기인데 아직 대세하락이 결정지어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주식을 다 팔고 떠나라는 얘기가 아니다. 조만간 어느 정도 하락세가 진정이 되고 다시 오르는 반등이 나올 때 잘 점검해서 주식 물량을 줄이거나 종목을 교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얘기이다.

 

 

인생 전체의 오버홀 작업

 

 

올 해 호호당은 몸과 마음을 전면적으로 분해 점검하고 또 수리하는 오버홀(overhaul)을 진행 중이다. 잠자는 시간도 정상으로 돌리고 금연했으며 아침 운동을 열심히 하는 한편 치아도 부지런히 손보고 있다.

 

내년이면 세는 나이로 70, 그러니 장차 20년 정도 더 살려면 손을 좀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싶다.

선진국이긴 한데... 

 

 

우리나라는 분명 선진국이다. 선진국이란 고도의 산업 및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로서 국민의 발달 수준이나 삶의 질이 높은 국가를 일컫는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란 점에 대해 우리 스스로는 정말 그런가? 싶겠지만 여러 객관적 국제기준에서 보면 선진국이라고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OECD 국가이고 또 IMF가 선정한 선진국 목록 안에도 들어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뉴스위크(Newsweek)가 선정한 세계 최고 국가(The world's best countries) 30개국 명단 속에 우리나라는 당당히 15위를 랭크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대한민국은 비록 톱텐(TopTen)에 들지는 못한다 해도 선진국임이 확실하고 또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 대한민국은 꿈을 이룬 나라이다. 먼 옛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하고 노래하던 1970년대 초반으로 되돌아가보면 우리는 정말이지 대박이 난 나라임이 분명하다. (나 호호당은 1955년생, 우리가 얼마나 빈곤한 나라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왔는지 분명히 보았고 몸에 새겼다.)

 

원래 우리 스스로를 대한민국이라 부르지도 않았다. 그냥 한국 또는 남한이었다.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당시 응원가 가사 속에 대한민국이 들어가면서 그 이후 대한민국이 되었다. 4강까지 진출하면서 국민적 자긍심이 높아졌고 물론 그 배후에는 경제적 성취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한 계기는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당시부터였다. 그 무렵부터 자타 공히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우를 받고 또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60년 우리 국운을 살펴보면 정확하게 부합한다는 사실

 

 

이쯤에서 우리 국운의 흐름과 함께 살펴보자. 우리의 장기국운, 즉 360년에 걸친 국운은 1904년에 시작되어 2264년까지 이어진다. 나 호호당은 이를 6개의 시기로 나누어 파악한다.

 

따라서 1904년부터 1964년까지가 국운 제1기였고 1964년부터 2024년까지가 국운 제2기에 해당된다. 국운 제1기는 으레 그렇듯이 시련과 수난의 시기였다. 일제 치하 그리고 6.25 전쟁 등 엄청난 시련이었다. 국운 제2기는 힘찬 도전의 시기에 해당되는데 우리의 그간 흐름을 보면 참으로 부합이 된다.

 

국운 제2기, 1964년 2월에 시작해서 내년 2024년 1월말로 마무리가 되는 60년 순환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로 나누어 살펴보면 앞의 일들이 정확하게 일치가 된다.

 

한 해의 수확을 알 수 있는 때는 9월 23일 경의 추분 무렵인 바, 60년 우리 국운으로 보면 그 때는 2002년이었다. 한국이 대한민국으로 격상된 시기와 일치한다. 그리고 한 해의 수확이 확정이 되어 창고에 풍성하게 들어차는 때는 11월 초의 입동 무렵이니 우리 국운 상으로 2009년이 된다. 바로 그 이듬 해 앞서의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그로서 글로벌 선진강국의 반열에 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9년 국운의 겨울부터 소비와 부채가 기본이 되다 보니  

 

 

겨울은 생산의 시기가 아니라 소비의 시기이다. 그렇기에 2009년부터 우리 경제는 생산이 아니라 그간에 만들어내고 일궈낸 수확물을 소비하면서 경제를 운영해왔다. 소비 경제는 으레 부채를 늘림으로써 더욱 확산이 되는 법인데 그게 오늘날 우리 경제의 현실을 정확하게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 무렵부터 중요해진 경제용어가 바로 LTV, DTI, DSR, 즉 담보인정비율, 총부채상환비율,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이 그것이다. 목돈이 없어도 거액의 아파트를 살 수 있게 해주고 카드를 긁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 장치들이다. 결국 모두를 빚쟁이로 만들어놓는 현대금융의 놀라운 기술이다.

 

우리 모두 빚의 늪에 빠져서 허덕이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탈출하고 싶다. 그리고 그 유일한 희망은 레버리지(leverage)를 사용하는 것이다. 생산이 아니라 금융투기가 희망인 까닭에 또 다시 원금보다 더 큰 빚을 내어 레버리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금융게임은 늘 그렇지만 승자는 적고 패자는 다수가 된다.)

 

그래서 코로나 시국 당시 문재인 정부 시절 빚투와 영끌이 대거 유행했고 정부 또한 재정적자를 마구 늘려서 경제를 운영하면서 국가도 엄청난 빚을 떠안고 말았다. 물론 수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하는 좀비기업 또한 일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모두가 빚쟁이, 개인도 가계도 기업도 국가도 전부 빚투성이가 되었다.

 

빚에 허덕이면서도 소비수준은 유지하고자 하니 자연스럽게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인구감소 지방소멸은 기본이요 외부 환경으로 인해 고금리 고유가 고환율이 되고 있다. 더불어 중국 경제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면서 그 악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이젠 약간의 충격에도 견디기 힘든 체질이 되어버린 우리 대한민국

 

 

추석 연휴가 끝나고 증시가 개장되자 그야말로 겁나게 급락하고 있다. 증시보다도 더 중요한 지표는 원달러 환율이라 하겠는데 이게 오늘은 더욱 치솟고 있다.

 

물론 하루 이틀의 환율도 중요하겠지만 나 호호당이 유심하게 살피고 있는 지표가 하나 있으니 원달러 주봉차트에서 과거 미국 금융위기 당시 52주선이 1326.04원을 고비로 꺾인 바 있는데 지금의 52주선이 장차 이 가격을 넘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원달러 52주선은 1313.03을 기록하고 있다.)

 

왜 이렇게 달러가 강세인가? 그 이유도 참 이상하고 해괴하다.

 

미국 정부는 현재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그 국채를 사줄 고객이 많지가 않다. 예전엔 독일과 일본이었고 지금은 일본과 중국인데 최근 미중 갈등으로 중국은 미국 국채를 사줄 마음이 별로 없다. 그러니 나라로 치면 미국 국채를 사줄 나라는 사실상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이야말로 미국의 가장 큰 호구이고 고객인 셈이다. 그러니 미국 또한 립서비스의 경우 넉넉하게 일본에게 해주고 있다. 미국에게 협조적인 일본의 자민당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중대한 국익에 들어간다.)

 

이처럼 사줄 나라가 많지 않다보니 국채 수익률을 높게 해줄 필요가 있겠고 그러니 국채 수익률을 올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 연준은 그 어느 선진국보다 가장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글로벌 시장에서 돈이 빠져서 미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결과 달러 강세가 된다.

 

빚이 가장 많은 나라일 경우 신용이 우려되어서 그 나라 통화가 약세가 되어야하건만 미국 달러는 빚이 많아서 이자 더 쳐준다고 해서 오히려 강세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가령 우리나라 정부나 국가가 돈이 없어서 국고채를 마구 발행할 경우 또 수익률을 높게 해줄 경우 그걸 보고 얼씨구 하면서 외부로부터 달러나 여타 통화들이 유입될 턱이 없다. 오히려 달러가 왕창 빠져나가서 자칫 외환위기가 될 터인데 미국은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기축통화라고 해도 참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수퍼 파워이고 우리는 그냥 여느 선진국, 그 차이라고 하겠다.

 

 

 

역시 부동산이 걱정이다

 

 

최근 연준의 태도를 보면 내년에도 고금리를 유지해갈 모양새이다. 그러면 어디선가 약점을 가진 나라가 먼저 뻥-하고 터지기 십상이다. 그 대상국으로서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우리가 될 수도 있겠고 나아가서 중국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과거 외화위기처럼 동남아 국가에서 서먹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는 부동산 가격이 고금리에 오래 견딜 수가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부채를 쌓고 쌓아서 만들어진 부동산 가격인 까닭이다. 그러니 부동산 하락이 어느 정도를 넘으면 그 즉시 전체 경제가 무너질 것은 물론이다.

 

그러니 우리 경제는 간당간당한 상황에 처해있다. 당장은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2002년으로서 대한민국으로 격상이 되고 2009년으로서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이다. 하지만 역시 국운의 겨울이 되자 생산할 것은 없고 소비를 중심으로 해오다 보니 빚만 잔뜩 쌓여서 이젠 운신과 거동이 몹시 어려워지고 불편해진 우리 대한민국이다.

 

 

선진국이지만 살기 엄청 어려운 우리나라 

 

 

선진국이 되긴 했지만 현 시점에선 희망이 없는 사회가 바로 우리사회이다.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니 메가스터디의 손주은 회장은 젊은이들아, 한국을 떠나시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당장 희망이 없다는 점에 대해선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라를 떠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내년 2월이 되면 국운 제3기 60년이 시작된다. 그 때가 되면 우리의 현 실정이 진짜 어떤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내년이면 70, 쉽게 실감이 나지 않는 일

 

 

곧 추석, 연휴가 끝나면 올 한 해도 거의 다 지난 셈이다. 내년이면 세는 나이로 일흔 즉 70이 된다. 옛날엔 70이면 古來稀(고래희)라 해서 드물다 했고 나 또한 예전부터 그 나이 정도가 되면 다 살은 사람이란 생각을 해왔는데 내가 바로 그 70이 된다. 내가 다 살았다는 얘기가 되니 쉽게 실감이 가질 않는다.

 

나이 50을 넘길 때 이제 야, 나도 드디어 쉰이 되는구나, 이제 본격 내리막이네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로부터 어느 사이에 또 다시 20년이 훌쩍 흘러서 이젠 70이 된다.

 

그 사이에 체력은 떨어지고 또 이런저런 증세도 있고 해서 고생 좀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아주 멀쩡하기만 하다. 기억력이 조금 감퇴했지만 사고력이나 이해력은 반대가 되고 있으니 그냥 퉁 치면 되리라. 아직 죽을 때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이 모두 영양이나 의류, 방한, 의료 등등 여러 면에서 시절을 잘 만난 덕분이리라.

 

 

생전 처음으로 건강을 돌보게 되었으니 

 

 

최근 담배를 끊었고 잠자는 습관을 정상화시켰으며 하체 근력을 열심히 키우고 있다. 게다가 걷기도 하루에 40분 이상 하고 있으니 생전 처음으로 건강을 돌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몸을 관리하고 만들어서 老年(노년)을 잘 지내보자는 마음이다.

 

오래 산다, 사실 이런 의욕보다는 최근 내가 느낀 것은 내 몸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이었고, 이에 다시 잃어가는 내 몸을 어느 정도까지는 되찾아보자는 것이다. 바둑에 비유하면 이제 마무리 국면이고 작은 끝내기 수순들로 이어져가는 것과 같다 하겠다.

 

옛날에 70이면 벌써 죽었고 오늘날 70은 관리 여하에 따라 남은 삶의 시간을 큰 탈 없이 잘 꾸려가거나 아니면 고생 고생하다가 가게 되는 初入(초입)인 것이다. (물론 그 어느 쪽이든 나 호호당이 언제까지 살 것인지 그거야 모르는 일.)

 

 

영원하지 않기에 삶은 아름답다는 사실

 

 

산다는 것, 이건 좋은 일이고 애틋한 데가 있다는 것을 일본의 옛 수필 “쓰레즈레구사”, 한자로 徒然草(도연초)를 읽다가 명확하게 배운 바 있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꽃이 어여쁜 이유 또한 피었다가 곧 질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예쁘고 때론 애처로운 것처럼 말이다.

 

젊은 날 나이 드신 아주머니께서 나를 보면서 아이고, 아까워라!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속으로 아깝다니, 이게 무슨 뜻이지? 했다. 세월이 가면서 그 말씀이야말로 참으로 옳았다. 당장은 활짝 피어있는 꽃 같은 젊은 청년이지만 언젠가는 늙고 초췌해져서 사라져갈 것을 생각하면 아깝다는 말씀이셨다.

 

나 또한 길에서 또 어떤 장소에서 젊고 싱싱한 젊은이들을 만나거나 대할 것 같으면 속으로 참 아깝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 호호당 또한 나이가 들었고 늙었으며 삶의 황혼녘에 서 있음이다.

 

언제 스러질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영원하지 않다는 것, 기한이 있다는 것, 모든 생명은 기한이 있기에 삶과 삶의 날들이 아름다울 수 있고 애틋할 수가 있다.

 

 

추분은 한 해의 일몰이어서

 

 

며칠 있으면 秋分(추분)이다. 추분이 무언가 하면 한 해의 日沒(일몰)이다. 2023년의 일몰인 것이다. 하루의 해는 저녁 6시 반에 지고 한 해의 해는 9월 23일에 진다. 따라서 올 추분은 2023년의 이브닝인 것이다.

 

하루의 해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동쪽에서 떠오르겠지만 2023년의 해는 이제 곧 질 참이다. 이처럼 나 호호당의 삶 또한 그러하다. 내일 아침이면 아마도 다시 아침빛을 받아 일어나서 활동하겠으나 삶 전체를 놓고 보면 이제 어둠 속으로 즉 죽음 속으로 또 있음에서 없음의 세계로 서서히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가고 있음이다.

 

 

나 호호당의 귀에도 상여소리가 들려오나니 

 

 

그러니 이제 내 귀에 輓歌(만가), 꽃상여가 나갈 때의 노래 소리도 들려온다.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저 건너 안산이 북망이로구나, 하는 노랫말이 들려온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나 호호당 만으로 아직 68세이니 액면 그대로 숨 꼴까닥 하고 넘어가는 때는 아직 꽤나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북망산천이 멀어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나이 곧 70, 이제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이 실은 북망산천을 향해 이미 출발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면 노랫말처럼 저 건너, 개울 건너 案山(안산) 즉 맞은 편 낮은 산이 바로 북망이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니 나 호호당이 이번에 담배를 끊고 매일 열심히 걷고 잠시간도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은 새 삶을 살아보자는 게 아니라 이제 삶의 집문을 나서서 북망으로의 걸음을 떼어놓은 것과 같다고 여긴다. 그간 잘 살았으니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젠 잘 죽기 위한 노력이다.

 

 

이미 북망산천을 다녀온 적도 있다는 사실

 

 

북망, 한자로 北邙(북망)이다. 그런데 사실 나 호호당은 젊은 날 죽어서 가는 북망산천이 아니라 실재의 북망산천을 다녀온 적이 있다.

 

1994년이었다. 우리가 중국과 수교한 것이 1992년이었고 이에 나는 다니던 은행을 그만 두고 중국에서 전산망 구축, 즉 SI 사업을 해보고자 중국으로 떠났다. 일단 답사를 해보고 시장 상황을 알아보고자 중국을 두루 돌아다닐 때 우연히 북망산을 갈 수 있었다.

 

처음에 그 북망산이 우리 상여소리에 등장하는 그 북망산인줄 몰랐다. 그러다가 거기에 엄청난 무덤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여기가 바로 북망산천이구나! 하고. 살아서 저승을 가보는 묘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현지 중국인들은 우리 문화 속에서 북망산천이 나름 큰 상징의 하나란 것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1994년의 일이니 그 또한 29년 전의 일이다. 요즘엔 옛일을 떠올리면 곧잘 30년 전의 일이다. 거 참!

 

북망산천은 오늘날 중국 허난성 뤄양, 즉 洛陽(낙양)의 북쪽에 있는 산이고 그 너머 북쪽에 황하가 흘러간다. 그래서 북망산천이다. 낙양은 중국 역사에 있어 서쪽의 長安(장안)과 함께 양대 古都(고도) 중의 하나이다.

 

낙양이 수도였으니 권력자들은 죽어서 북쪽의 망산에 묻혔다. 그 바람에 북망산에 가면 역대 황제의 능묘들과 왕후장상들의 무덤이 즐비하다. 따라서 죽어서 북망산천을 간다는 말은 살아선 호강을 누리지 못했더라도 죽어서 만큼은 그 반열에 들어가서 冥福(명복)을 누려보라는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살아선 고생 많았던 서민이지만 저승에선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살아보라는 축원.

 

어려웠긴 했으나 옛 농경사회 또는 씨족사회 시절의 사람들은 죽어서라도 그런 축원을 듬뿍 받았다. 온 마을 사람과 집안사람들이 꽃상여 위에 태운 뒤 온 마음을 다해 선산의 장지에까지 그런 축원의 노래를 부르며 갔다. 그러니 부럽다. 간단하게 2박3일 영안실에 사진 한 장 올려놓았다가 아침 일찍 화장터에 가는 오늘날에 비하면 말이다.

 

 

열심히 운동하고 몸을 가꾸어서 힘차게 저승길을 달려가보자

 

 

오늘 아침에도 7시 반에 집을 나가서 근처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왔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속력을 올려서 걷는다. 40분 정도 지나 언덕을 오를 땐 숨이 헐떡댄다. 좋은 유산소 운동이다.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갑지만 열이 난 나는 땀에 흠뻑 젖는다. 좋은 아침이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의 삶은 내 스스로의 걸음으로 북망산천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는 거야! 거의 도달할 무렵이 되면 엉금엉금 기어갈 수도 있겠으나 일단은 힘차게”

 

오랜 시간에 걸쳐 언어학과 운명학에 관해 연구해왔다. 하지만 여기까지란 생각을 한다. 물론 앞으로도 새로운 무언가를 더 알아내고 통찰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보다는 지금까지의 것을 정리하는데 더 신경을 쓸 생각이다. (물론 자연순환운명학 그리고 실용기술인 증시 투자하는 기술은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가르쳐줄 생각이다.)

 

늘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해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행동이다. 연어는 산란을 위해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오른다, 오르는 과정에서 힘이 다 빠지고 잡혀 먹히기도 한다. 그런 연어들에게 있어 성공이란 다름이 아니라 최종목적지에 도달해서 알을 낳고 수정을 마무리하는 일이다. 그러곤 죽는다.

 

젊은 날엔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산란과 그 직후의 죽음을 위해 저처럼 맹렬하게 죽을힘을 다해 물을 거슬러 오른다, 뭐가 좋지? 이해가 가질 않네, 했다. 가수 “강산에”의 노랫말처럼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일 뿐이었다.

 

최근엔 생각이 좀 바뀌고 있다. 세대를 이어가는 것과 죽음은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내 경우 자녀 하나는 낳았으니 본전은 건졌고 혹시나 죽을 때 또는 죽고 나면 생각하지 않은 望外(망외)의 이득을 하나 건지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싶은 것이다.

 

오늘의 얘기는 삶은 영원하지 않기에 더 애틋하고 아낄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열심히 건강을 회복해서 저승길 또한 힘차게 달려가 보자는 약간은 이상한 얘기였다.

 

#1. 更生(갱생)

 

거의 3주간 글을 올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못했다”. 책 쓰는 일 때문이 아니라 어쩌다가 덜커덕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어서 그랬다.

 

최근 2년 사이 이석증과 그로 인한 후유증 등으로 어지러운 증세가 날로 심해졌는데 우연한 계기에 이틀 정도 담배를 참아보니 상태가 한결 좋아졌다. 이에 어렵사리 담배를 끊게 되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럴 때 쓰는 중국말이 있으니 하오뿌롱이, 好不容易(호불용이)가 되시겠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 너무나도 생경스러웠다. 이 행동에서 저 행동으로 넘어갈 때 으레 내 오른 손가락은 담배를 가져와 입에 물렸고 그러면 또 라이터를 더듬어서 가져왔다. 무의식적인 루틴이자 습관.

 

그런데 그걸 하지 않으니 모든 행동의 마디마다 어색함을 느낀다. 내 오른 쪽 손가락들이 허공에서 경련을 한다.

 

어떤 생각을 하기 시작하며 절로 담배 한 대, 생각을 하다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또 한 대,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히면 또 한 대, 이처럼 모든 행동의 마디, 이 일에서 저 일로 넘어가는 모든 이음새를 담배가 연결해주었는데 이제 그 절차가 없어졌다.

 

뇌세포의 작동이 멈춘 것 같은 뻑뻑함, 특히 뭔가 먹고 난 뒤의 입가심으로서의 담배는 거의 절대적이었는데 그걸 하지 않는다? 엄청난 허탈감과 상실감에 시달렸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어떤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지만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도중에 일어나서 방안을 서성대거나 아니면 냉장고를 뒤진다. 그러다가 결국 포기한 글이 그 사이에 6개 꼭지는 될 것이다.

 

이에 이번 글만큼은 기필코 마무리해서 올려야지 하고 다짐을 하면서 쓰고 있다. 또 그만큼 금단증세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예전엔 늙어간다는 것이 그냥 나이가 들고 기능이 조금씩 약해지는 정도로만 여겼는데 그게 아니란 사실, 노화와 함께 이런저런 탈이 생기고 생각하지 않은 통증과 문제점이 수반된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전혀 알지 못 했다.

 

이처럼 삶은 늘 새롭다. 하루하루는 어제와 비슷하지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새로운 환경 속으로 들어가 있다. 새롭다는 것이 뭐 좋다는 게 아니라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 생각하지 않았던 경우와 만나게 된다는 얘기이다. 나이가 들었고 늙었지만 그럼에도 삶은 늘 初步(초보)이고 또 初行(초행)길이란 생각이 드니 참 묘하다.

 

암튼 담배를 끊은 것은 나 호호당으로선 엄청난 更生(갱생)의 노력이다.

 

 

#2. 적절한 죽음

 

 

푸틴에게 반기를 들었던 프리고진이 죽었다. 그런데 그 사망시기가 너무나도 적절한 타이밍이다.

 

1961년 6월 1일생이니 辛丑(신축)년 癸巳(계사)월 乙丑(을축)일이다. 그간의 경력을 보면 내후년 2025 乙巳(을사)년이 입춘 바닥의 운이다.

 

죽은 날자를 보면 2023년 8월 23일이다. 癸卯(계묘)년 庚申(경신)월 癸丑(계축)일이다. 에너지가 모두 빠져나간 大寒(대한)의 年運(연운)이고 달은 작년 5월 乙巳(을사) 바닥월로부터 15개월, 이제 힘든 흐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때, 사실 보통 이런 때 벗어나지 못하고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날은 8월 15일이 乙巳(을사)일 바닥 날인데 그로부터 8일, 아주 제대로 적절한 타이밍에 푸틴이 저승으로 보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푸틴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날은 6월 23일이었는데 그로부터 사실상 60일이 지난 8월 23일에 죽임을 당했다는 점이다. 60일 최소 순환 단위를 더 살았을 뿐이다.

 

프리고진, 푸틴이 키웠는데 주인을 향해 덤벼드니 푸틴이 처리했다.

 

그리고 체면을 구긴 푸틴 또한 이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참고로 푸틴의 경우 입춘 바닥이 2036 丙辰(병진)년임을 밝혀둔다. 늦어도 올해로부터 10년 뒤인 2033년이면 사고가 나지 않을까 싶다.

 

 

#3. “중국의 40년 호황(boom)이 끝났다.”

 

 

며칠 전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선언적 진단이다. 이제 미국 쪽에선 중국의 호시절이 끝났다는 점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등소평의 개혁개방, 그리고 1979년 초 미중간의 국교 수립 이후 이어져온 중국 경제의 놀라운 발전과 약진이 이제 멈추고 있다. 그러니 나름 感慨(감개)가 크고 또 크다.

 

그간 경제 방면의 수많은 道士(도사)들과 일류의 碩學(석학)들이 중국 경제의 붕괴를 예측했고 예언해왔지만 중국 경제는 그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잘 굴러왔다.

 

나 호호당은 중국 경제가 진짜 어려워지는 때를 2026년으로 잡고 있다. 예전부터 나 호호당의 블로그를 봐 오신 독자라면 알 것이다.

 

올 해로서 중국의 좋던 시절이 끝났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이에 중국 정부 즉 중국 공산당이 갖은 노력과 대책을 쓰다가 결국 이거 안 되는구나 하고 대충 손을 드는 시점이 2026년이란 얘기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2-3년은 더 걸릴 것이라 본다.

 

중국 당국자들은 1990년 일본 경제의 붕괴 그리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지켜보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2001년 WTO 가입 이후 엄청난 무역흑자를 통해 달러가 쏟아져 들어왔으니 이에 중국 당국자들은 의기양양 자신만만이었다.

 

하지만 그게 결국 독이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중국은 과감하게 엄청난 경기부양책을 실행에 옮겼다. 거대한 국토 전역에 도로와 다리 고속철, 비행장 발전시설 등등 엄청난 인프라를 깔았다. 인프라가 갖추어지자 덩달아 아파트 개발이 뒤를 이었다.

 

지금 중국이 안고 있는 모든 경제적 문제점들은 15년 전의 엄청난 부양책의 후유증이다. 무지막지한 부채로 인해 더 이상 중국식 경제시스템, 인프라 투자와 부동산 개발을 기초로 하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역시 더 이상 돈이 갈 곳, 즉 돈이 생산적으로 쓰일 곳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물론 중국 당국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그 대안으로서 내세운 것이 선진기술을 통한 경쟁력 강화, 즉 “중국제조 2025”였다. 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대응 특히 반도체 기술에 대한 미국의 단속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4. 교차로의 우리와 일본

 

 

중국 그리고 우리의 경우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는 반면 일본은 성장세가 상당하다. 올해 2분기에만 1.5% 성장했다고 하니 이 추세라면 올해 일본의 성장률이 6%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나 호호당의 경우 오래 전부터 2023년 무렵이면 우리가 일본에게 추월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는데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니 그 또한 약간 신기한 감이 든다.

 

얼마 전 뉴스, 한국경제학회가 작성한 “한국경제 성장의 현황과 도전”이란 보고서 내용도 사뭇 심각하다. 반도체 이후 성장에 힘을 실어줄 혁신 산업이 부족해지며 2010년 이후 생산성이 급락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금년도 고용탄성치가 작년의 1/3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성장도 어차피 저성장이지만 그에 앞서 취업 자체가 늘어나지 않는 국면이라 하겠다.

 

내년 2024년이 우리 대한민국 60년 사이클의 입춘 바닥인 까닭이다. 앞으로 15년 이상의 세월 동안 우리는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반면 일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오랜 기간의 조정을 거쳐서 나름의 어떤 활력을 찾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일본의 국운은 60년 순환에 있어 2005년이 입춘 바닥이었기에 올 해 2023년은 이제 소만, 즉 초여름의 국면, 즉 前進(전진)의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