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號(연호)란 무엇인가?



오는 5월 1일 일본의 새 천황이 즉위한다. 이에 따라 그간의 平成(평성)이란 연호 대신에 令和(영화)라고 하는 새 연호를 사용하게 된다. 


年號(연호)란 한문을 사용하는 동양의 군주국가에서 쓰던 기년법, 즉 햇수를 세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고 우리와 일본이 사용하였으나 오늘날 우리와 중국은 군주제가 아닌 까닭에 일본만 사용하고 있다. 그 바람에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다. 


일본 천황은 일종의 종교적 首長(수장)이기에 실제 통치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인들은 천황의 교체를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새 연호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는 것은 이웃인 우리로서도 관심을 가져볼 만한 사안이라 본다. 



연호는 새 군주의 소망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연호는 새로운 군주가 지향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이번의 레이와라고 하는 연호 역시 새 일황이 자신의 재임 중에 어떤 일본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지 그 소망을 담고 있기에 이웃 일본의 장래를 점쳐보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호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본다. 


삼국지연의의 대표 연호 建安(건안)



삼국지연의를 읽다 보면 建安(건안)이란 연호가 자주 보인다. 건안이란 연호, 平安(평안)한 세상을 세운다는 뜻이다. 이는 조조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를 옹립함과 동시에 수도를 피폐한 낙양을 버리고 허창으로 이전한 뒤에 내건 연호이다. 


이후로도 전쟁은 이어졌으나 조조가 건안 5년 북방의 강대 세력인 원소를 제압하면서 당시 중국의 중심 지역이었던 화북 지방은 평정이 되었다. 그 이후로 적벽대전 등등 많은 전쟁이 있었으나 모두 변두리에서의 싸움이었기에 나름대로 建安(건안)했던 셈이다. 



자립을 강조하고 있는 새 연호라 하지만.



일본은 그간 연호를 택할 때 주로 중국의 문헌에서 따왔으나 이번의 令和(영화)는 처음으로 일본의 고문학인 萬葉集(만엽집) 속의 글귀에서 채택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진정한 自立(자립)을 소망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왜냐면 일본은 아직 자립의 나라가 아닌 까닭이다. 특히 군사 방위 면에서 사실상 미국의 속국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은 제2차 대전 이후 평화헌법을 채택하면서 이런저런 이유에서 방위를 사실상 미국에게 위임해왔는데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를 이번 연호에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개헌 건과도 즉각적으로 맥락이 닿는다. 이번에 물러나는 아키히토 천황은 그간 아베와 무척이나 불편한 관계였는데 새 천황이 아베의 스탠스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번 연호의 제정 배경과 관련해서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연호가 일본의 옛 문헌인 ‘만엽집’에서 채택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 문학과의 연관이 전혀 없지는 않다. 우리나 일본의 고문학 특히 지배계급의 문자이던 한자로 된 시가 속엔 중국 문학의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만엽집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于時、初春令月、氣淑風和.

(초봄의 달이 되니 공기는 맑고 바람은 부드럽다.) 


그리고 이 문장의 원형은 중국 後漢(후한)대의 사상가인 張衡(장형)이 지은 歸田賦(귀전부), 즉 논밭으로 돌아갈 것을 노래한 시가 속에 있으니 다음과 같다. 


於是仲春令月時和氣凊.

(중춘의 달에 이르러 날은 따듯하고 하늘은 맑다.)


장형의 귀전부는 훗날 중국 시문학의 중요한 장르를 이룬 田園詩(전원시)의 원형이라 하겠으며 특히 도연명의 絶唱(절창)인 歸去來辭(귀거래사)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이번의 새 연호인 令和(영화)는 새 천황의 치세는 부드럽고 맑은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물러나는 아키히토의 치세 즉 1989년부터 올 해까지의 30년간 일본의 현실은 무척이나 어둡고 힘든 시절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1990년 말 저 유명한 거품 붕괴가 시작되었고 그 이후론 한 때 전 세계를 삼킬 것 같던 일본의 경제적 위세는 오늘에 이르러 그저 먼 옛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신의 치세 동안 일본이 몰락했다는 점에 대해 이번에 물러나는 아키히토는 대단히 유감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치세가 좋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키히토는 자신에게 덕이 없는 탓, 즉 不德(부덕)의 소치로 여겼을 것이고 이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상당한 염증을 느끼고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바람에 천황의 자리는 대개 사망한 후에 넘겨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번의 경우 고령이긴 하지만 아직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물려주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키히토의 경우 천황에 오른 1989년부터 올 해까지 30년인 바, 30년은 一世(일세)라는 점에서 물러나기에 적절하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의 새 연호에 대한 나 호호당의 생각은 조금 달라서



그런데 레이와, 令和(영화)라고 하는 새 연호에 대해 나 호호당이 나름 해보는 되는 생각 또는 기대가 있어 얘기해본다. 


만엽집에 실린 시가의 원형이 중국 장형의 귀전부이고 그 시는 이른바 田園詩(전원시)란 점 때문이다. 전원시는 단순하게 전원의 풍경과 소박한 생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중국 역사를 통해 지배계층이었던 사대부나 문인들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권력에서 밀려나거나 염증을 느낀 자들이 나중에 욕심을 버리고 고향 마을인 전원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어가며 편안하게 살아보리라 하는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전원시이다. 


사실 이런 과거 지배계층의 정서는 유교적 영향이 강한 우리나 일본 중국의 경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널리 유포되기도 했으니 노력해보다가 정 안 되면 시골로 돌아가 땅이나 파면서 살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생각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50대 이하의 사람들에겐 돌아갈 시골이 사실상 없다, 돌아가서 농사지을 땅이 없기에 앞서의 귀거래사 풍의 감정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각설하고 요지를 얘기해보면 이번 레이와란 연호가 연호 제정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원시적 감성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 나 호호당은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군국주의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다가 미국을 만나 좌절했고 그 이후 경제적으로 확장하면서 패권을 노리다가 그 역시 1990년 거품 붕괴로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에 오늘날 일본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그냥 평범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주어진 처지에 만족하면서 살고픈 소망이 강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또한 일종의 전원시적인 감정이라 할 것인 바, 이에 나 호호당은 이번 연호 레이와를 볼 때 당초 의도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일개 국가로서의 일본이 장차 또 다시 글로벌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기 보다는 이제 나름의 田園(전원)으로 물러가 그냥 조용히 지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최근 우리와 일본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갈등관계이다. 하지만 경제 측면이나 민간 교류 차원에선 사실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 호호당은 멀지 않아 우리와 일본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해갈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인근의 일본이 우리의 좋은 이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런데 이번 연호를 보니 문득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고 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