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함을 달래는 방법

 

 

오늘은 색깔에 대해 얘기할 까 한다.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최근의 울적한 기분 때문이다. 스스로 울적한 지 아닌지 평소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글을 쓰고자 모니터 앞의 키보드를 대했을 때 금방 손가락이 나가지 않으면 그제서야 알게 된다, 내가 다운되어 있음을.

 

이럴 땐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의욕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도 있지만 최근 며칠 사이의 그림은 기분 전환용이었다. 어제 올린 영국 콘월의 성 마이클 수도원 풍경과 그 전날 올린 텅 빈 바닷가 백사장, 폭풍이 다가오는 바다 그림 등이 바로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그린 것들이다.

 

두 번째로 울적함을 달래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잠자리에 누워서 갓등 아래에서 책을 읽다가 졸리면 등을 끄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잠이 오지 않으면 등을 켜고 책을 보는 식이다.

 

간밤의 책은 “철이 금보다 비쌌을 때”란 제목의 책이다. 도서출판 까치에서 나온 책이다. 읽다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기분이 다소 업 되었다.

 

 

오늘의 주인공 울트라마린 블루

 

 

물감의 색 중에 울트라마린 블루, 줄여서 울트라마린. 영어론 Ultramarine, 이런 색이 있다. 내가 수채화를 그릴 때 너무나도 애용하는 색깔이다.

 

알아낸 사실은 이 단어의 유래였다. 울트라마린이란 색깔은 쉽게 말해서 짙은 靑藍(청람)색, 바다색이다. 난 평소 그냥 ‘마린’이라 그러지 왜 울트라마린이란 했을까 하는 점에 대해 그냥 강한 바다색을 뜻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ultra 란 접두사가 극도로, extremely의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것은 그게 아니라 ‘바다를 건너온’ 이런 의미로 붙여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경우 ultra 는 저 너머, beyond 란 의미였던 것이다.

 

 

울트라마린 블루는 바다를 건너온 값비싼 물감이었다.

 

 

색깔 자체가 바다색이다 보니 울트라마린은 ‘진한 물색’ 정도의 의미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바다 건너온 물감’이란 의미였던 것이다.

 

바다 건너온 물감은 당연히 비싸다, 울트라마린이란 색의 이름만으로도 값이 비싸다는 뜻이 담겨겨 있는 셈이다.

 

비싼 색이다 보니 울트라마린이란 색깔의 배경에는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청금석 또는 라피스 라줄리

 

 

청금석이란 보석이 있다. 한자로 靑金石. 이렇게 말하면 잘 모를 것이고 라피스 라줄리란 이름을 대면 보석에 대해 약간 지식이 있는 분이라면 알 수도 있겠다. Lapis lazuli. 흔히 라피스라 부르는 보석이다.

 

사실 라피스란 말은 라틴어로 돌이란 뜻이고 라줄리는 ‘푸르다’란 단어의 소유격이다. 그러니 라피스 라줄리라고 해야 푸른 색 돌이란 의미가 되지만 시장에선 흔히 라피스라고만 부른다.

 

청금색, 라피스 라줄리는 지금도 꽤 값이 나가는 보석이지만 예전엔 그야말로 끔찍하게 비싼 보석이었다. 전 지구상에서 나오는 곳이 사실상 단 한 군데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오로지 한 군데에서만 나오는 보석

 

 

라피스 라줄리가 나오는 곳은 오로지 아프가니스탄이다. 아프가니스탄 중에서도 단 한 곳,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에 인접한 해발 7천 미터의 힌두쿠시 산맥의 험한 산속에서만 나온다.

 

중국 청나라 시절엔 너무나도 귀하고 고가의 보석이라 황제와 황족들만이 장식하던 보석이었다. 청금석 구슬 하나면 도시 하나를 다 사도 돈이 남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럴 정도였으니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지극히 고가였을 것은 물론이다. 오늘날의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보다 수십 배나 비쌌던 청금석이고 라피스 라줄리였다.

 

그런데 그 비싼 청금석을 갈아 으깨어 물감으로 만든 것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울트라마린 블루란 사실이다.

 

물론 상질의 것은 보석으로만 사용되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물감의 재료로 쓴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지극히 고가의 보석을 으깨어 만든 물감

 

 

청금색을 으깨어 만든 안료로서의 울트라마린 블루를 과연 어디에다가 썼을까? 궁금하지 않으신가.

 

13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절의 유명한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는 파도바의 부호 가문인 스크로베니 집안의 사적 예배당 벽에 청금석을 으깨어 만든 울트라마린 블루 물감으로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옷을 색칠했다.

 

예수와 성모 마리아, 바로 聖畵(성화)를 그리는데 있어 그 끔찍하게 비싼 물감을 사용했던 것이다. 부호였던 스크로베니 가문은 조토가 그 색을 쓸 수 있도록 천금 만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전 유럽에 소문이 쫙 퍼졌다. 흔히 金漆(금칠)을 한다고 하지만 그보다 수백 배 비싼 청금석을 으깨어 색으로 칠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치도 그런 사치가 없었다. 고려시대의 극사치 물품인 金泥(금니)로 그린 관세음보살 그림이 있지만 그보다 더한 사치였다.

 

 

사치를 향한 무한경쟁

 

 

그러자 뜨거운 경쟁이 시작되었다. 누가 얼마나 더 많이 청금색 물감을 칠할 수 있느냐를 놓고 유력 가문이나 왕, 귀족, 교회들이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유력 도시인 피렌체나 밀라노 등지에서 유명 화가들을 모셔다가 울트라마린 블루의 성화를 그리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그야말로 출혈 경쟁이었다. 이에 로마 교황 바오로 3세 그리고 율리오 2세는 오늘날 로마 교황청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미켈란젤로를 불러다가 대작들을 그리는 데 있어 라피스 라줄리의 물감인 울트라마린 블루를 넉넉히 쓰게 했다.

 

예배당 안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의 화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그림만 무려 1만2천점이었고 이 모두에 울트라마린 블루를 사용했다. 물론 예수나 성모 마리아 등의 주요 인물에 한해서만 칠을 했다. 로마 교황청에 관광을 가면 반드시 보게 되는 그림들, 가령 ‘아담의 창조’, ‘최후의 심판’과 같은 그림들 말이다.

 

 

사치야말로 인간적이다!

奢侈(사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경원시된다. 도덕군자들이 흔히 경계해야 할 항목으로 사치와 방종을 강조하는 까닭이다. 반대로 그만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치야말로 남들에게 자랑하고 자신의 위상을 드높임에 있어 없어선 안 될 아이템이 아닌가. 벤츠 아니면 저렴한 BMW라도 몰고 다녀야만 하는 이유가 달리 무엇이랴, 돈 자랑이지.

 

나 호호당은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해준다. 돈이 있으면 기꺼이 사치를 하라고, 하지만 사치만 하지 말고 남들에게도 그 액수만큼 베풀면서 하라는 말을 해준다. 그래야 욕을 덜 먹게 된다고.

 

과거 시절에 사치를 하면서도 비난을 피하는 방법은 바로 종교적인 일에 사치를 부리는 것이었다. 종교야말로 마구 사치를 부려도 남들이 노골적으로 비난하기 어려운 항목이 아닌가 말이다.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의 초상을 그리고 옷을 칠하는데 있어 끔찍하게 비싼 울트라마린을 썼다고 하면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돈지랄을 했다는 비난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유명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언젠가 국립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던 그림은 금을 녹여서 사용한 것이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그보다 수백 배 비싼 라피스 라줄리를 안료로 해서 만든 울트라마린 블루로 칠했으니 우리보다 사치가 훨씬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청색을 내는 안료는 사실 자연계에서 귀하다. 녹색이야 많지만 블루는 정말 드물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청화백자의 그 산뜻한 청색 역시 천연 코발트라고 하는 지극히 귀한 색깔을 써서 만들어졌다.

 

 

첨단산업이었던 합성염료와 안료의 개발

 

 

그런데 오늘날 블루 물감 혹은 염료, 아니 모든 색깔이 모두 지극히 저렴하다. 화공학자들이 천연의 색상을 인공적으로 합성해내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성공했기 때문이다.

 

독자분들은 바스프(BASF)란 독일 회사를 들어봤을 것이다. 세 명의 독일인 화학자들이 1865년에 세운 회사인데 오늘날 세계 유수의 화학기업이다.

 

그런데 바스프가 처음 개발에 성공한 아이템이 바로 인공 울트라마린 블루였다. 바스프는 염료 즉 인공물감을 합성하면서 떼돈을 벌었고 그를 바탕으로 오늘날 플라스틱과 기능성 제품, 농화학, 정밀화학, 석유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제품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화학 기업이 되었다.

 

오늘날엔 인공 합성을 통해 수천만가지의 색이 만들어져있고 해마다 새로운 색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청바지 또는 진 역시 합성염료가 있기에 저렴한 비용에 생산할 수 있다. 옛날엔 인디고 블루라고 해서 오로지 인도에서만 생산이 되는 극도로 비싼 천연안료였다.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간 목적 역시 향신료와 함께 인디고 블루를 독점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

 

오늘의 글은 블루에 관한 글이었다. 인간의 탐욕과 사치, 기술개발에 얽힌 이야기였다. 기분 전환 차 썼다.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어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