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앞날을 점쳐준 도사
중국 전국 시대, 7개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시절, 엄청난 실력을 갖춘 도사가 산중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 밑에는 두 명의 제자가 있어 兵略(병략)을 배우고 있었다.
출세욕이 강하고 성미가 급한 제자가 공부를 대충 마치고 세상에 나가더니 7개 나라 중에서 어느 한 나라의 대장군이 되었다. 유학 가서 최첨단 기술을 익힌 박사가 국내에 돌아와 일류 대기업의 CEO 자리를 맡은 셈이라 하겠다.
나머지 한 명의 제자는 머리가 더 총명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물정이 어두워서 그랬는지 아무튼 한참을 더 배운 다음에 下山(하산)하게 되었다.
떠나기에 앞서 스승은 제자의 앞날을 점쳐줄 테니 밖에 나가서 마음에 드는 꽃 한 송이를 구해오라고 했다. 하지만 계절이 10월 하순이라 좀처럼 꽃을 찾기가 어려웠다, 허탕을 친 제자는 할 수 없이 스승의 방안 꽃병에 담긴 국화 한 송이를 꺼내어 스승 앞에 내밀었다.
이에 사부가 제자의 앞날에 대해 예단하길 “이 꽃은 벌써 한 번 꺾어진 바가 있으니 너도 소인배로부터 陰害(음해)를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겠구나, 하지만 국화는 사람들이 널리 애호하는 꽃, 처음엔 흉하더라도 결국 성공하게 될 것이야!” 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부는 제자에게 새롭게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무릎뼈 臏(빈)이엇다. 참으로 뜻밖의 이름이었다. 그 뜻이 무릎뼈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릎 뼈를 까는 형벌을 뜻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한 제자는 사부가 다 뜻이 있어서 그랬을 것으로 믿고 받아들였다.
臏(빈)이란 이름을 받은 제자는 세상에 나가서 먼저 출세한 동문을 찾아갔는데 그게 오히려 화가 되었다. 출세한 동문이 바로 소인배였고 이에 자기보다 실력이 좋은 동문을 상대로 모함을 했다. 그 바람에 빈은 무릎뼈를 들어내는 참혹한 형을 당하게 되니 졸지에 이름이 현실이 된 셈이다.
그러나 빈이란 이름의 제자는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고 그러다가 다른 나라의 군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최측근의 책사가 되었다. 이에 자신을 음해한 동문에게 멋진 복수극을 성공시킴과 동시에 부귀영화를 누린다.
사부는 꽃점을 통해 제자가 세상에 나가면 음해를 받아 무릎제거를 당할 것으로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고 이에 이름을 矉(빈)이라고 붙여주었던 것이다.
이 얘기는 ‘동주열국지’에 나오는 孫臏(손빈)과 龐涓방연)의 故事(고사)이다.
무엇으로든 점을 칠 수 있다!
사부는 꽃으로서 제자의 앞날을 예단했지만 사실 사부는 그 무엇으로든 점을 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으로든 방법에 상관없이 점을 칠 수 있다면 점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는 얘기도 된다. 그리고 그게 정말 그렇다.
왜 무엇으로든 아무 것으로든 점을 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처럼 꽃으로 점을 쳤지만 사실 꽃은 수단이자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점법으로서 5백원 짜리 동전으로 점을 쳐도 된다. 가령 지금 어떤 일이 있어 성사 여부가 궁금하다고 할 때 미리 학이 나오면 오케이라 하고 숫자 500이 나오면 안 된다는 식으로 정해놓은 다음 동전을 던져서 어느 쪽이 나오는지 확인하면 그만이다. 가장 간단한 동전 점법이다.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첫 여성이 치마를 입었는지 바지를 입었는지에 따라 점을 쳐볼 수도 있으며, 색깔을 정해놓고 집밖에서 만나는 사람의 옷 색깔에 따라 점을 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점치는 데 사용되는 도구는 그저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
너무 싱거운 소리가 아니냐 하겠지만 그게 절대 그렇지가 않다. 왜 무엇으로든 정하기 나름에 따라 다 점을 치는 방법이 될 수 있느냐 하면 그 이유는 이렇다.
옛날 시절부터 사람들은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무당을 찾아가서 問占(문점)을 해왔다. 고대 그리스에선 델포이 신전을 찾아가 그곳의 巫女(무녀)들로부터 神託(신탁)을 받았다.
오늘날엔 누구나 신탁을 받을 수 있다.
神託(신탁)을 영어로는 오라클(oracle)이라 한다. (세계 제2위의 소프트웨어 기업이 바로 미국의 기업 오라클이다. 자기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할 것 같으면 기업경영의 신탁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알기로 오라클 제품을 사용해도 망하는 회사 참 많던데 말이다.)
神託(신탁)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神(신)이 사람을 매개자로 하여 그의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이라 되어 있다.
따라서 무당이나 점쟁이는 신의 뜻을 전하는 매개자 즉 중개인에 불과하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진짜 중요한 요점은 신의 뜻을 알기 위해 중개인을 꼭 찾아갈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민주화된 세상에선 누구나 그리고 무엇으로든 점칠 수 있다.
그냥 당신이 점을 치는 순간 진지하게 가령 운명의 여신에게 앞날을 물어봐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어차피 모든 면에서 ‘민주화’가 되어가는 세상에 점치는 일 역시 특별한 계층의 사람 즉 특별한 중개인을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옛날 신을 믿던 시절 신전에서 봉사하는 무녀도 특별하게 여겨졌지만 오늘날엔 고지식하게 그런 특별한 중개인의 말만 영험하다고 믿을 이유도 사실 없다는 얘기. 정 자신이 없다면 조만간 AI 무당 즉 인공지능 무당이 곧 등장할 것이니 기다려볼 일이다.
요지는 이렇다.
예전에 사람들이 능력 빵빵한 신이 있다고 두루 믿었을 때엔 당연히 그 신을 모시는 신관이나 무당의 중계를 통해야 했지만, 당신이 그다지 신을 믿지 않는 일반 사람이라면 점 하나 쳐보자고 갑자기 신을 믿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고 그냥 자기 스스로 점치는 방법도 알아서 정하면 되는 일이고 그것으로서도 충분하다는 얘기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당을 찾아가지 말라는 말도 아니고, 용하다는 곳을 이젠 찾아가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이미 그 자체로서 좋은 컨설턴트이기 때문이다.
점을 칠 때엔 진지하게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기에 무엇으로든 점을 쳐도 된다, 5백원 짜리 동전점도 훌륭하고 앞글에서처럼 트럼프 카드로 점을 치면 더욱 그럴싸 하다. 따라서 점치는 방법은 억만 가지도 더 된다. 정하기 나름이니 말이다.
그저 점을 칠 때엔 진지하게 정신을 집중할 일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전쟁에 나가는 장수는 勝敗(승패)를 점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점을 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으니 알려드린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결과에 상관없이, 물론 되면 더욱 좋겠지만 그를 떠나서 어떤 일은 시도하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을 때도 있다.
가령 엄청 속으로 좋아하는 이성이 있어 한 번 대쉬해보지 않고선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자. 그럴 때도 점을 쳐볼 수 있지만 이 경우 성사가 될까 여부를 놓고 점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마음을 먹은 일이니 성사 여부를 問占(문점)해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모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달에 시도할 까 아니면 다음 달에 시도해볼까를 놓고 점을 치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 이미 하기로 마음을 작정한 다음에 그 일의 성사를 물어보는 것은 웃기는 일이란 사실이다.
이런 점을 칠 것 같으면 운명의 여신이 있어 이런 엉터리가 다 있나! 내가 아니라고 하면 무시하겠지! 하면서 성질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예전에 장수가 전쟁에 나갈 때 勝敗(승패)를 점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어떻게 싸울 것인지 강공을 할 것인지 아니면 서서히 적을 지구전으로 대할 것인지, 아니면 어떤 마음으로 임할 것인지를 물어보곤 했다 한다.
덧붙이는 말:
올린 그림 중에서 블루로 칠한 한적한 로마의 거리, 성당이 있는 음영의 그림에 대해 화가인 정직성 씨가 칭찬을 해주니 정말 기분이 업 된다. 그리고 또 페이스북에 올라온 질문에 관한 얘기이다. 트럼프 카드 점을 칠 때 숫자가 높을 수록 강해지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있을 법한 질문이었다. 간단히 답하기가 그렇기에 언제 다시 한 번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글을 올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