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도 首丘初心(수구초심)이라!

 

“내가 죽거든 뼈 한 조각은 부산 앞바다에 뿌려달라”,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조치훈 9단이 이번 달 초부터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 칼럼 속의 표현이다.

 

여섯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바둑 수업을 시작하고 프로 입문한 이래 지금까지 76번에 달하는 최다 타이틀을 차지했던 조치훈이다. 그간 무수히 일본으로 귀화하라는 권유를 받았음에도 끝내 대한민국 국적을 지켜온 이유를 글 속에서 밝히고 있다.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이는 모두 일본 국적”이며 “나 자신도 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슬픈 역사를 짊어졌던 한국이 너무도 애틋해 국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한 때 전 국민을 뜨겁게 만들었던 조치훈 9단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조 9단은 6세 때 당시 바둑의 메카였던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났다. 1968년 11세에 사상 최연소 프로바둑 기사로 입단해 최연소 9단(24세), 대삼관(大三冠·한 해에 기세이·메이진·혼인보 3대 타이틀 우승), 혼인보전 10연패 등 경이적 기록으로 일본 바둑 역사를 고쳐 썼으며 지난해 12월에 일본 프로바둑 사상 첫 1600승을 이루며 건재를 과시했다.

 

나 호호당 역시 바둑 애호가(아마 3단 정도)인지라 조치훈 9단이 드디어 실력이 늘어 메이저 대회에 도전해가던 1970년대 중반, 일본에서의 결승전을 국내 텔레비전 3사가 당시로선 드물었던 생중계를 할 때 숨죽이며 시청했었다.

 

1980년엔 일본 바둑 최고의 타이틀인 메이진(명인)을 획득했을 때의 분위기는 2002년 월드컵 4강 갔을 때와 거의 흡사했다. 이에 국내로 금의환향, 나라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나 호호당도 당시 명인전 우승 장면과 인터뷰 내용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칼럼을 통해 “명예와 부를 안겨준 (일본에) 감사한 마음 때문”에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묘는 일본에 쓸 계획이지만 그래도 “뼈 한 조각은 (고향인) 부산 앞바다에 뿌려주면 고맙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 마음 너무나 공감이 가서

 

 

어제 기사를 접한 뒤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치솟았다. 1955년생인 나 호호당은 1956년생인 조치훈 9단의 심정이 너무나도 공감이 간다.

 

그래 당신이나 나나 이 나이 정도면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생각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지, 하는 마음이다.

 

 

조치훈 9단의 운명 순환

 

 

조치훈 9단은 음력으로 1956년 6월 20일, 양력으로 7월 27일생이다.

 

丙申(병신)년 乙未(을미)월 乙未(을미)일이다. 이에 운기의 절정인 입추는 1985 乙丑(을축)년이고 입춘 바닥은 2015 乙未(을미)년이었다.

 

조 9단이 최초의 타이틀을 획득한 것은 1980 庚申(경신)년, 입추 5년 전의 일이었고 그로부터 일본 바둑, 즉 세계바둑을 평정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도 운명 순환의 흐름을 벗어나진 못한다. 2015년 입춘의 해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조 9단의 행동에선 道人(도인)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넘어선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행동과 언어, 뭐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승부사이면서도 승부를 벗어나 있었고 그러면서도 승부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道人(도인)의 길을 가는 조치훈 9단  

 

 

이번 글을 통해 조 9단은 이런 말도 하고 있다. “38년 남짓 결혼 생활을 하며, 타이틀을 딴 뒤 숙소에서 전화하면 아내가 ‘잘했다’고 말해줬다”며 “이 말을 듣고 싶어 열심히 바둑을 뒀다”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은 결국 인간 간에 오가면서 나누는 情(정)이다. 그런 정을 나눌 상대가 없어졌으니 조 9단인들 道人(도인)이 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삶을 견뎌내려면 

 

 

요즘 시대, 비혼이 유행이고 결혼해도 자녀를 갖는 것은 거의 사치에 가깝다. 그래도 누군가 나 호호당에게 조언을 부탁하면 얘기해준다. 어려워도 아기를 갖는 것은 더 없는 행운이자 축복이다. 아기를 갖지 않더라도 최소한 함께 살아가고 늙어갈 반려자인 짝은 꼭 있어야 삶을 견뎌낼 수 있다는 조언을 해준다.

 

삶을 견뎌낸다, 그런대로 잘 지내왔고 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젊은 친구들은 이 말이 약간은 의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긴 인생을 놓고 보면 삶의 시간 속에는 때론 견뎌내어야 하는 때가 참으로 많다는 것을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된다.

 

바둑을 통해 이룰 것 다 이뤘고 마음의 반려자인 아내도 세상을 떠난 조치훈 9단, 이번에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하나의 사연, 일본으로 끝내 귀화하지 않았던 속내를 밝히고 있다. 여우가 죽을 때가 되면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말이 首丘初心(수구초심)이다.

 

바둑계의 전설이자 풍운아였던 조치훈 9단도 이제 수구초심의 애틋한 속내를 토로하면서 삶을 정리해가고 있다. 성원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