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긴긴 밤에 삭풍의 소리를 들으며

 

 

동짓달 그야말로 긴긴 밤, 바깥엔 삭풍이 불고 있다. 삭풍이란 朔方(삭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삭방이란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오르도스 시가 있는 멀고 먼 서북쪽의 옛 지명이다. 오늘날에도 몽골 유목민들의 땅인 그곳에서 불어오는 아주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朔風(삭풍)이다.

 

이 시각 서울 기온을 보니 영하 7도이고 진짜 기온인 체감온도는 영하 13도. 이 시각에도 바깥에서 일 해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경계 근무를 서는 일선 병사들 말이다.

 

삭풍에 오래 노출되면 코 점막과 기관지, 허파를 말려서 염증을 유발한다.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거나 가습기가 필요하리라.

 

그러고 보니 길고양이들, 물을 마실 곳도 없을 터인데 이 밤 많은 놈들이 폐렴으로 죽거나 또 죽어 가리라. 딱하고 또 딱하다. 문명화된 인간의 세상에선 죽는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지만 야생에선 삶과 죽음이 반반이다. 이에 나 호호당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나무관세음보살, 밖에 없다. 이번에 가면 다신 이 세상에 오지 말기를! 부디 제발.

 

지금 바깥은 八寒(팔한)의 地獄(지옥)이나 진배없다. 지옥이란 인간 상상력의 산물, 살거나 지내기에 가혹한 환경을 최대한 과장해서 그려낸 산물일 것이다. 과장을 줄이고 현실화하면 우리 사는 이곳이 바로 지옥 아니겠는가.

 

다행히 발전된 기술 덕분에 이 시각 잠옷을 걸치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바깥에서 고생하는 저 많은 생명들에게 생각이 가 닿으면 마음이 다시 무겁다. 그러니 기껏해야 애써 모르는 척 할 뿐이다.

 

 

겨울의 본명은 죽음이다

 

 

겨울의 다른 이름은 그리고 진짜 이름은 “죽음”이다. 本名(본명)이 死亡(사망)이란 얘기이다. 그러니 겨울 동안 모든 것이 차례대로 죽는다.

 

 

헌 것이 죽으면 새 것이 잉태되니 

 

 

이제 며칠 있으면 冬至(동지), 동지로서 하늘 해가 죽고 다음 달 1월의 이맘 때 大寒(대한)이 되면 땅이 죽을 것이다. 이에 다시 한 달이 지나 2월 이맘때인 雨水(우수)로서 사람이 죽는다.

 

동지로서 헌 해는 죽지만 새 해의 씨앗이 만들어지고 1월의 대한으로서 헌 땅은 죽지만 새 땅의 기틀이 움직이며 2월의 우수로서 헌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의 精氣(정기)가 생겨난다. 이게 바로 “자연의 순환”이다. 나 호호당은 그 순환이 조금치도 어김이 없음을 어느 날 보았기에 자연순환운명학을 만들었다.

 

운명이란 건 결국 자연의 순환이구나! 하고 感(감)을 확실히 잡은 것은 2007년의 일이었지만 그 이후 연구와 검증을 통해 2014년 4월에 정립했으니 근 9년 전의 일이다. 그 이후로도 더 넓고 멀리 그리고 깊은 곳에까지 눈이 미쳤다.

 

시각은 새벽 3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잠시 창을 열어보니 차디 찬 칼바람이 순식간에 얼굴을 덮는다. 바람이 칼날 같고 화살 같다. 몸서리를 친다.

 

동지에 뿌려진 새 해의 씨앗은 석 달에 걸쳐 양육되다가 3월 20일 경의 春分(춘분)으로서 사건의 지평선,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위로 그 新生(신생)의 모습을 드러낸다. 해는 빛의 원천이니 그로서 한 해의 새로운 비전이 제시된다. New Vision!

 

이어 대한으로서 기틀이 깔린 새 땅은 4월 20일 경의 穀雨(곡우)로서 온기를 뿜어내며 모든 종자를 키워내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시 5월 20일 경의 小滿(소만)으로서 새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새 생명들이 약동한다. 새 나무는 新綠(신록)을 매달았을 것이며 모든 새들과 벌레들 또한 살림을 시작한다.

 

 

소만, 신록의 때

 

 

사람 또한 마찬가지. 5월 하순이면 저녁과 늦은 밤에도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이에 한 해의 순환을 60년의 순환에 적용해보면 그 어떤 이도 입춘 바닥으로부터 17.5년이 경과한 小滿(소만)의 때에 이르러 조금씩 일이 풀려가기 시작한다. 이제 자신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한다. 好運(호운)의 시작점, 하지만 시작이란 얘기이지 바로 좋다는 말은 아니다.

 

환타지 문학의 거장 JRR 톨킨이 먼 훗날 “반지의 제왕”이란 걸작을 쓸 수 있었던 것은 60년 운세의 소만인 1911년 여름 방학을 스위스의 아름다운 곳에서 보내면서 얻은 영감 때문이었고 이에 30년이 흘러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집필할 수 있었다. 톨킨의 문학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고 당시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그 후 50년이 흐른 1968년, 톨킨의 나이 76세에 쓴 편지에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다.

 

한 때 전 유럽을 뒤흔들어 놓았던 프랑스 혁명이 낳은 풍운아이자 군사 천재 나폴레옹 역시 차별 받던 식민지 출신이었으나 은인의 배려로 프랑스 하층 귀족의 자제들이 들어가는 브리엔느 예비군사학교에 입학했고 이어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것이 운세의 소만 무렵이었다. 코르시카 식민지 사투리를 쓰는 그 왜소하고 창백한 청년이 20년 뒤 프랑스 제국의 황제가 되어 전 유럽을 호령할 줄이야 그 누군들 알 수 있었으랴!

 

대단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어떤 사람도 소만이면 그럭저럭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게 된다. 5월 20일 경의 푸르고 푸른 신록을 생각해보라, 그게 어떤 이가 소만을 맞이했을 때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한 때 푸르다.

 

 

소만의 모순, 삶의 모순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하나의 矛盾(모순)이 발생한다. 우리들이 5월의 푸른 신록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결국 좋은 계절이 왔음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고 신록을 낸 나무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나무의 입장에 서보자. 일단 저장했던 영양분은 거의 소진이 되었다. 가을 낙엽 후 여태껏 생산하고 벌어놓은 영양분이 없다. 그런 판국에 새 잎을 만들어서 가지에 매달려면 있는 거 없는 거 죄다 끌어 모아야 한다.

 

농부로 치면 당장 먹을 식량도 없는데 가을 수확을 위해 당장 밥 지어 먹을 수 있는 볍씨를 땅에 뿌려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 마음이 오죽 할까?

 

5월은 따라서 모든 생명이 가난한 때이다. 톨킨은 가난할 때 스위스의 아름다운 곳을 찾아갔고 나폴레옹은 차별과 괄시를 받으며 군사학교를 다녔다. 또 그랬기에 그 시간들이 각별했을 것이다.

 

청춘은 가난하다. 청춘은 가난해야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것은 풍성한 것이 아니라 풍성하려는 몸짓이다. 결국 아름다움이란 결핍에서 온다. 앞에서 예로 든 新綠(신록)은 가난하기에 아름다운 것이고 이에 矛盾(모순)이라 한다.

 

삭풍이 휘몰아치는 이 겨울밤, 죽음의 시간에 나 호호당은 지금 이상한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 어쩌다가 글이 한 겨울의 죽음에서 생명이 약동하기 시작하는 5월의 얘기로 흘러왔을까?

 

 

삶의 원동력, 어리석음과 집착

 

 

죽음은 사실 편안하다, 아주 많이! 더 이상 고통 받을 몸이 없으니 당연히 그렇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삶에 대해 맹목적인 의지와 의욕을 가지는 걸까? 사는 게 좋다고 하면서 무조건 살고 볼 일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 점을 확실하게 눈치를 차린 사람이 벌써 있었으니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 자체가 삶이 무조건 좋다고 하는 어리석음 즉 無明(무명)과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의지 즉 執着(집착), 이 두 가지 때문이라고 그 양반은 지적했다.

 

그를 이어받아 다르게 해석한 이는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를 긍정했던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맞고 터지고 까이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고통을 정면에서 직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저항의 메시지”를 남긴 그였다.

 

이를 조금 달리 비틀어서 표현한 이가 또 있다. 實存(실존)은 本質(본질)에 앞선다고 했던 사르트르.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 가보다 우선 눈앞에 닥친 삶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네가 무엇이든 또 무엇이 되든 그건 다만 너의 自由意志(자유의지)라고 거창하게 부추긴 것이다.

 

나 호호당은 자유의지란 말 엄청 싫어한다. 사르트르란 작자가 너무 잘난 체 하면서 부풀려 놓은 탓에. 목적 없이 던져진 너의 삶이니 너 스스로 알아서 목적을 만들고 잘 해보렴,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이제 글을 그쳐야 하겠다. 답 없는 문제를 끝까지 풀어보겠다고 힘만 쓸 순 없는 노릇, 글을 그치니 다시 들려온다. 창밖에 부는 저 매서운 朔風(삭풍)의 목소리가 들린다. “대충 살아, 그리고 사실 이젠 거의 다 살았잖아? 뭘 그렇게까지.”

 

순간 알게 된다. 생명은 죽기 직전에 이르러 가장 풍요롭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