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ge Ratio, 아예 번역도 되지 않은 경제용어

 

 

여전히 우리말로 번역되지도 않은 용어가 하나 있는데, 영어로 Wage ratio 란 것이다. 최저 급여와 최고 급여의 비율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임금이란 법적 제도가 있어 이를 연봉으로 환산하면 금년 2022년의 경우 22,973,280원, 줄여서 2천3백만 원이다. 이것에 비해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의 경우 최저임금의 몇 배를 받느냐를 놓고 따지면 그게 바로 Wage ratio 이다.

 

올 해 우리나라 공기업의 평균 연봉은 8천2백만원, 최저임금에 비해 대략 3.57배를 받는다. 대기업의 경우 삼성전자를 보면 평균 연봉은 1억4천4백만원, 최저임금의 6.26배 정도 된다.

 

Wage Ratio, 이 배수가 커질수록 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받는 액수에 따라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가 있어 실제 차이는 적어지겠으나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얼마 전 과학영재고 학생들이 의대만 간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거기에 “세계적 조롱거리”라고 비꼬는 표현도 달려 있었다. 그런데 나로선 그 비아냥이 더 마음에 걸린다, 그 표현에서 오히려 강한 嫉視(질시)와 선망이 느껴지니 말이다. 기초학문인 과학에 도박을 거느니 의대 간다, 고소득이 거의 보장되는 길이니 합리적 선택이지 않은가.

 

 

양극화란 결국 소득격차에서 온다. 

 

 

문제는 양극화이다, 결국. 소득 양극화, 자산 양극화.

 

Wage ratio, 경제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이런 표현이 우리말로 옮겨져 있지 않다는 것 자체가 나름 수상쩍다. ‘임금배율’이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것 같은데 말이다. ‘소득격차’란 표현은 제법 쓰고 있지만 배율로 나타내면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런가.

 

“김앤장” 같은 법무법인의 경우 연간 10억 보수 정도는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걸 최저임금 대비 43배로 나타내기엔 좀 꺼려지나 보다. (큰 법무법인의 파트너에 속할 경우 수십억을 가져간다. 은퇴한 이후에도 연금으로 해마다 최소한 10억은 받는다.)

 

그런가 하면 로스쿨 나와서 한 달에 기껏 2백만원, 사실상 최저임금을 가져가는 변호사도 적지 않다. 법조시장, 변호사 사업이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이른바 “중산층이 없어져가는 시대”이다. (물론 중산층이란 게 그 개념이나 범위가 무척 모호하지만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데 이 역시 원인은 임금격차가 원인이고 동시에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을 밀어 올리면서 더더욱 자산격차를 키워왔다.

 

앞으로 10년이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가 되게 생겼다. 일부 지방 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경작지와 국립공원이 절반씩 될 수도 있겠다.

 

양극화란 궁극적으로 소득격차 또는 임금격차에서 온다. 이와 더불어 시간이 지나면서 생겨난 자산 격차 또한 원인이다.

그런데 오늘날 오늘은 이런 양극화를 가져온 근원적인 원인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양극화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이 모든 출발점은 미국이다.

 

올해 2022년 상반기 조사에 따르면 미국 3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급여 평균은 1,060만 달러이고 직원 급여의 중위값(median)은 23,968 달러로서 이른바 wage ratio, 즉 임금배율은 무려 670배로 나왔다. 기업의 말단 직원이 받는 연봉이 아니라 중위값(median) 급여 대비 그렇다는 얘기이다.

 

미국 300대 기업 최고경영자는 우리 돈으로 130억 정도 받는데 비해 중위값 임금은 3천1백만원이다.

 

이건 평균이 그렇다는 얘기이고 wage ratio가 무려 6,474배나 되는 대기업도 있다. 그리고 해마다 이 배율은 계속 높아져가고 있다.

 

미국 대기업들의 임금 배율이 일반 중간 정도 직원의 670배가 평균이고 심할 경우 6,474배라니 이거야말로 “같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말이 도무지 성립이 되질 않는다. 인권의 나라 미국이 말이다.

 

물론 누진적인 소득세가 있으니 세후 배율을 계산해보면 556배가 된다. 앞의 670배와 사실 큰 차이가 없다. (미국은 최고가 37%이고 중간값 급여의 세율은 12%이다.)

 

이 정도 차이라면 최고경영자는 사실상 과거의 영주나 제후라 하겠고 중간 정도의 직원은 그냥 일반 평민 또는 서민이라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 수백배에서 수천배의 차이.

 

 

그게 마치 성장의 원동력인 줄 알았던가? 

 

 

아직 우리나라가 미국 정도의 임금배율인 것은 아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역시 급속도로 미국 스타일을 모방하고 따라가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게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고기업이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를 보면 사장단의 연봉이 평균 100억 정도이고 몇 백 명에 달하는 그냥 임원의 평균 연봉은 8억 정도 된다.

 

우리가 미국만큼이나 심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최저임금이 2천3백만원이란 점, 이에 반해 우리 또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공기업의 중간 간부라 하면 대략 1억 2천-1억3천만원 정도 받고 있으니 wage ratio가 5배 정도는 된다.

 

미국은 이제 아예 기본이고 최근엔 우리나라도 제법 자주 볼 수 있지만 “임직원 스톡 옵션(Employee Stock Option)”이란 제도가 양극화의 또 다른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가 전 세계의 양극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봐도 무방하다. 이 또한 하나의 流行(유행)이자 트렌드인 것이다.

 

 

미국의 중산층이 번성했던 이유

 

 

그런데 놀랍게도 예전의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시절 미국은 그야말로 글로벌 원 톱(one top)이었다. 당시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연봉은 오늘날 기준으로 2백2십만 달러(우리 돈으로 약 30억원)였는데 당시 소득세율이 무려 91%나 되는 바람에 세후 수령은 3억원 정도였다.

 

누진세율이 워낙 높아서 대기업들 또한 더 받고 더 주고 싶어도 사실상 세금으로 다 뜯기는 바람에 연봉을 올리는 대기업 또한 별로 없었다. 바로 그 무렵 “임직원 스톡 옵션”이 등장하긴 했으나 그 역시 세금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대기업 최고경영자와 기업 중간급 직원의 wage ratio 역시 잘 해봐 몇 배 정도에 불과했다. 따라서 최고경영자란 직위는 수입보다는 권위와 명예의 자리였으니 바로 그 시절이야말로 “미국의 중산층이 번성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최고경영자는 그냥 회장이나 사장이었다. 최고경영자 즉 CEO란 용어가 미국에서 처음 쓰인 것은 1972년이고 특히 1990년대 미국이 엄청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통해 경제 불황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군대의 ‘작전 사령관’과 같은 뉘앙스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임직원 스톡 옵션, 양극화의 또 다른 원인

 

 

그리고 유명무실하던 임직원 스톡 옵션 제도 역시 미국이 허덕이던 1980년대 초, 정확하게 1981년 레이건 행정부 당시 소득세율을 그 이전의 최고 70%에서 50%로 대거 낮추면서 갑자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세금으로 다 뜯기던 것이 이젠 돈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임직원 스톡 옵션(줄여서 스톡 옵션)이 또 하나 활기를 보이게 된 것은 그 무렵 미국의 중심인 동부 쪽이 아니라 서부 캘리포니아 실리콘 벨리에서 IT, 정보기술을 개발하는 벤처 기업들이 대거 등장한 때문이었다.

 

벤처 기업들은 초기에 운영자금이 부족했기에 나중에 잘 될 경우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스톡 옵션 제도를 적극 활용했건 것이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선 너도 나도 모두 채택하는 보상 제도가 되었다. 특히 최고세율이 그 이후 30-40% 사이 정도에 머무는 바람에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미국의 경우 소득에 대한 누진세가 실은 대단히 높았던 나라였다는 점이다. 1940년대는 무려 90% 수준이었고 1960년대 들어 70%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서 20세기 초반의 미국은 양극화를 철저하게 봉쇄하던 나라였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부터 사모 펀드와 인수합병이 활성화되면서 경영이 부진한 기업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매각하거나 합병 처리하는 과정에서 마치 해결사와도 같은 경영자들이 등장하면서 소송에서 이길 경우 당당 변호사가 엄청난 돈을 챙기는 일종의 ‘성공 보수’와도 같이 엄청난 보수를 가져가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으니 그로서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 사회가 고착화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양극화라 하겠다.

 

 

더 이상 성장률이니 GDP 같은 것은 의미가 없어졌으니 

 

 

오늘에 이르러 미국은 그야말로 살벌한 양극화 사회로 변하고 말았다. 이제 중산층은 없다. 우리 또한 외환위기 이후 미국식을 마냥 좋은 것인 줄 알고 따라서 양극화되었고 중산층은 사라지고 있다. 

 

국민소득 그리고 성장률을 따지기 이전에 이대로 그냥 가면 그건 좋은 사회로 갈 수가 없다고 나 호호당은 단언한다. 그러니 과연 우리가 양극화를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음 글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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