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고 하는 기이한 물건

 

나 호호당은 올 해로서 예순하고도 넷이다. 62년과 9개월을 살았는데 돌이켜보면 긴 세월 잘도 살아온 것 같지만 망각의 힘 때문인지 언제 그 긴 세월 보냈나 싶다.

 

시간이란 물건은 실로 기이한 데가 있다. 치과에서의 1시간은 정말 길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시간은 하룻밤이 금방 지나간다. 오죽했으면 동짓달 긴긴 밤의 한 허리를 뚝 끊어내어 갈무리했다가 봄날 사랑하는 임이 왔을 때 길게 펼쳐놓겠다고 황진이가 말했으랴. 하지만 그 시간도 짧았을 것이다.

 

이처럼 시간은 길다 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물건이어서 종잡을 수가 없다. 하루는 길어도 한 해는 짧을 수가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의 시간 감각은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저번 겨울은 워낙 추워서 이 긴 겨울 언제 끝나려나 싶었지만 벌써 계절은 늦봄이고 여름이 저만치 얼씬거리고 있으니 그렇다.

 

 

우리들은 운의 변화에 대해 둔감하다

 

 

이처럼 시간 감각이 둔하다면 운의 변화에 대해서도 우리는 둔감할 것이다.

 

오늘도 봄이고 내일도 봄이니 당분간은 봄일 것으로 여기며 지낸다. 그러다가 어느새 한 방에 훅 하고 늦여름을 지내고 있을 우리들이다. 물론 수십 년씩 살아본 이는 계절 변화를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변화에 대해 우리는 미처 잘 생각하지 못한다.

 

하루하루의 日常(일상)에 묻히다 보면 오늘 역시 어제와 같고 내일 또한 오늘 아니 어제와 같은 내일이 될 것으로 여긴다.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하루하루의 날들이 누적되면 계절이 변하고 한 해가 지나간다.

 

평범한 日常(일상)이 누적되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작은 변화가 누적되어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내기에 우리들은 때론 그 변화의 폭에 놀라기도 하지만 여전히 하루하루 그리고 한 해의 변화는 점진적인 것으로만 느껴진다. 작년에 비해 올 한 해 역시 비슷할 것으로 느낀다.

 

 

털끝의 차이가 나중에 千里(천리)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한 해가 자꾸 지나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와 시간에 가서 닿아 있음을 문득 느끼게 된다.

 

A에서 B 사이엔 큰 변화가 없었고 이런 식으로 C와 D를 지나서 E에 다다르면 A와는 너무나도 다른 경치가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모든 지점은 앞의 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건만 어느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고 그로서 놀라고 또 당황하게 된다.

 

내가 어쩌다가 이곳에 와 있는 거지?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줄이야! 하면서 장탄식을 하기도 하고 내가 뭐 유달리 능력이 뛰어났던 것도 아닌데 오늘 내가 이런 자리에까지 오르다니! 하면서 스스로의 행운에 대해 서프라이즈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털끝만한 미세한 차이가 나중에 千里(천리)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말이 전해져온다. 毫釐千里(호리천리)가 그것이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

 

 

흔히 초심을 잊지 말라,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잊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올챙이 시절을 잊었다는 것은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환경 또한 너무나 달려져 있기에 새롭게 초심에서 시작하고 싶어도 그게 참으로 힘들다.

 

잘 나가다가 불현듯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하자. 그러면 실망도 하고 분노도 하다가 나중엔 그래 다시 시작해보자, 처음처럼 열심히 해보자는 결의를 다지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런데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란 얘기이다.

 

 

어느 누구도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순 없다.

 

 

서양의 고대 현자였던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길 어느 누구도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순 없다고 했다.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을 되돌릴 순 없는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에 우리나라 경제는 서서히 지속적으로 어려워져왔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에 적응한다. 그런 까닭에 이젠 만성이 되어버린 탓인지 그저 그런가 보다 한다.

 

2008년 당시에도 취업이 어렵다, 비정규직 자리만 있다 하면서 젊은이들의 불만이 대단했지만 10년이 흐른 오늘에 와서 되돌아보면 그때만 해도 좋은 시절이었다는 절로 든다.

 

최근 한국 지엠이 우리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법정관리로 들어가겠다는 내용의 승부수를 띄웠다. 뿐만 아니라 국내 자동차 기업 전체가 어쩌면 올 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특히 부품 협력업체들은 이미 너무나도 어려운 실정이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들이었는데 말이다, 실로 격세지감이다.

 

 

운은 돌아오는 것이지만 그게 참!

 

 

運(운)이란 돌고 도는 것이란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운의 사이클은 무려 60년에 걸쳐서 돌아온다.

 

좋은 시절 보내고 나면 그 좋은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60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어려운 시절 또한 마찬가지이고.

 

그렇기에 현재 그런대로 나쁘지 않고 또 신나는 일도 제법 있어서 이젠 큰 탈 없겠구나 싶어 방심하게 되고 어영부영 대충 세월을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또 역경에 빠져있음을 알게 된다. 그 궁지에서 또 다시 헤쳐 나와서 다시 좋은 세월 보려면 그게 무려 60년이 걸린다는 얘기이다.

 

 

‘운이 60년에 걸쳐 순환한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

 

 

60년에 걸쳐 순환하는 운이란 얘기는 다음과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좋다 싶은 세월이 15년, 반대로 고생이고 역경이다 싶은 세월 역시 15년, 나머지는 발전하는데 15년, 내리막을 타는데 15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하루하루의 변화는 거의 없기에 日常(일상)이란 말을 쓴다. 한 달 한 달의 이어짐도 큰 변화는 없다. 한 해 한 해의 삶도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그게 15년이 지나면 뭔가 좀 다르다. 15년은 60년 순환에 있어 1/4이고 따라서 운의 계절변화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시 한 번 15년이 흐르면 처음으로부터 30년이 된다. 이는 즉 봄이 가을로 변했다는 얘기이고 여름이 겨울 되었다는 얘기이다. 엄청난 변화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이다.

 

1987년 당시 많은 것들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로 넘어오고 경제가 도약하면서 사실 전 국민이 흥에 겨워 들뜨고 신바람이 났었다. 그런 것이 30년이 흘러 2017년이 되자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도 팍팍해지고 말았다. 어딜 가도 냉소적인 분위기만 가득하다. 그때는 우리 국운의 여름 夏至(하지) 축제였던 것이고 지금은 국운의 한겨울인 冬至(동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해는 내일 또 뜨겠지만

 

 

결국 우리가 소중히 해야 할 것은 눈앞을 지나가는 바로 오늘의 이 시간들이다. 내일에도 또 해가 뜰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해는 우리 삶에 있어 다시는 뜨지 않는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