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학전’ 소극장이 얼마 전 문을 닫았다. 그 소식을 접하는 순간 나는 30년 전의 어느 봄날로 돌아갔다.

 

학전의 주인이 김민기란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뮤지컬 공연이 끝날 때면 김민기가 나와서 인사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다. 김민기를 근거리에서 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찾아갈 이유는 충분했다.

 

그때가 1994년 5월인지 6월초인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찾아간 날 저녁 공연은 마침 비가 와서 그런지 관객이 정말이지 20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속으로 아무리 그래도 김민기가 연출한 무대이고 또 끝나면 무대 뒤에서 나와서 인사도 한다는데 이렇게 관중이 없다니, 거 참 신기한 일이네, 했다.

 

1955년생인 나 호호당에게 김민기는 고등학교 시절 이래로 전설이자 영웅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71년 여름, 자주 찾던 부산 남포동의 레코드 가게에서 “김민기”란 음반을 가게 사장님의 추천으로 사온 것이 인연이었다.

 

들어보니 꽤나 충격이었다. 특히 “친구”란 노래는 듣는 순간 전류가 내 몸을 관통해갔다, 곡도 그렇고 가사는 더더욱. 그 이후 나 호호당에겐 있어 김민기의 대표곡은 지금도 “친구”이지 “아침이슬”이 아니다, 모든 곡이 좋지만.

 

김민기의 음반을 들을 때마다 대학은 당연히 서울로 갈 것이고 그러면 김민기를 찾아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굳혔다. 하지만 1974년 정작 서울로 상경하고 나니 김민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뒤 행방불명이란 얘기 등등 걱정되는 말만 들었다. 당시 분위기가 그런 때라 나 호호당도 김민기를 한 번 보겠다는 생각을 서서히 접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나 호호당은 1993년 말 근무하던 직장, 은행을 그만 둔 뒤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은행만 다니다가 늙어버리면 뭔가 억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에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기초로 중국으로 한 번 진출해보자, 이런 마음을 먹고 이듬해 1994년 4월에서 5월초까지 근 한 달 동안 홀몸으로 중국을 답사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한 후배가 알려주길 선배, 김민기 좋아한다고 했지, 대학로에 극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는데 김민기가 공연 끝날 때마다 인사차 나온데,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대학로 소극장 학전이었다. 공연을 나름 재미있게 보았지만 내 목적은 김민기를 한 번 보는 것이었고 또 성공했다. 나는 얼른 객석에서 일어나 김민기에게 다가갔고 10만원이 든 봉투를 성큼 내밀었다. 김민기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이에 나는 아, 그냥 팬입니다, 작은 성의입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당연히 악수도 했다, 대박! (1994년 당시 10만원은 그래도 면이 좀 서는 액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 호호당의 인생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학전 소극장에서 좋은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으나 겨를이 없었고 그러면서 서서히 김민기에 대한 생각도 다시 희미해져갔다. 사실 전혀 특별한 인연도 아니고 그냥 팬일 뿐이지 않은가.

 

그런데 2010년대 초반 어느 날 아는 이를 통해 학전 경영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으며 김민기 대표 또한 몸이 아주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더니 결국 얼마 전 학전 소극장이 문패를 내렸다. 그 사이 또 하나의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시대에 밀려 영웅이 되어버린 사람,  영웅이지만 결코 스스로 영웅의 풍모를 자처한 적이 없는 사람, 음원으로만 노래를 들을 수 있을 뿐 1970년대 이후 육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절대 없다는 기묘한 가수, 김민기. 수많은 배우와 아티스트들을 육성해낸 거인 김민기.

 

1951년 3월 31일생. 辛卯(신묘)년 辛卯(신묘)월 庚午(경오)일이다. 시는 미상이다. 그간의 경력이 잘 알려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입춘 입추를 정할 수 있다.

 

1980 庚申(경신)년이 입추였고 2010 庚寅(경인)년이 입춘 바닥이다. 군사 독재 시절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그것이 김민기란 음악천재를 시대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본인은 시대의 영웅이 되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그저 예술을 하고 싶었겠으나 말이다.

 

위암에 걸려 투병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올 해 73세,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부디 잘 치유되어서 건강한 몸으로 남은 삶을 잘 보낼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