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무쌍한 우리나라 여성

 

 

유튜브에서 본 동영상, 미국에서 공부 마치고 뉴욕의 어느 IT 계통에서 일하다가 정리해고 당한 젊은 우리나라 여성의 얘기였다. 그간 열심히 해왔고 혹시라도 일자리가 없어질 것에 대비해서 급여의 절반을 무조건 저축해오긴 했지만 정작 일을 당하고 나니 충격이 크다.

 

재취업할 수 있을 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고 용기도 내어본다, 달리 이런 생각도 든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행운이었기에 이제 어쩌면 운이 다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쩌지?

 

야, 대단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동영상을 셀프로 찍어서 올릴 정도면 멘탈 갑이네 싶었다. 왜 저 힘든 나라에 가서 고생하고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거야 스스로의 선택.

 

 

이제 운이 다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

 

 

저런 생각 또는 걱정,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몇 번씩은 해보게 된다. 이제 운이 다한 것이 아닐까? 나는 더 해보고 싶은데 운이 더 이상 받쳐주지 않는다면 어쩌지? 하는 걱정 말이다.

 

이런 걱정에 대해 답을 해주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했다.

 

정답을 알려드린다, 이런 걱정을 누군가 하고 있다면 그 누군가의 운은 아직 한창 뻗어가고 있다고, 앞길이 창창하다고.

창창, 한자로 蒼蒼(창창). 푸르고 또 푸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푸르다고 할까? 설명해보면 우리가 맑은 날 바깥에 나가 먼 경치를 바라보거나 먼 산을 바라보면 푸른 기색을 볼 수 있다. 이를 한자어로 嵐氣(남기)라고 한다.

 

따라서 앞길이 창창하다, 푸르다는 말은 갈 길이 저 멀리 아스라이 푸른 빛이 감도는 먼 곳까지 이어져있다는 말이 된다.

이 대목에서 삶과 운명의 비밀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한다.

 

저 멀리까지 가고픈 의지 또는 의욕이 있는데 운이 다해서 못 가는 법은 없다는 점이다. 가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즉각 앞으로 스트레이트하게 시원하게 뻗어가진 못 한다 해도 결국엔 갈 수 있다. 돌아갈 수도 있겠고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으나 마음만 있다면 끝내 가게 되고 갈 수 있는 것이 삶과 운명의 이치이자 팩트이다.

 

에이, 뻥이지, 가고 싶다고 해서 다 갈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지, 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더 일반적일 것도 같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의지가 있고 의욕이 있는 한 갈 수 있고 도달할 수 있게끔 이 세상은 만들어져 있다.

 

 

가지려면 비용을 치러야 한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가져라, have it! 이게 세상의 진리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진짜 그렇다. 이제 곧 70이 되는 호호당이 쓸데없는 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게 그렇기에 그렇다고 말할 뿐이다.

 

김광진 씨의 “편지”란 노래가 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오” 하는 노랫말. 애달픈 짝사랑의 노래이다.

 

저 대목에서 중요한 말은 “이제 나는 돌아서겠오”이다. 보라, 스스로 돌아서고 스스로 포기하고 있지 않은가.

 

말장난하려고 시작한 얘기가 아니다. 앞서의 그 여성도 경력을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한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드린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를 영어로 표현하면 at any cost 또는 at all costs, 이렇게 표현한다. 이게 핵심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의 비용을 치를 용의가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우리가 걸 수 있는 가장 큰 비용은 삶 전체라 하겠다. 목숨을 건다, 이게 다 건다는 표현이다. 올인(all-in)이다.

 

 

결국은 비용 대비 효과의 문제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원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이는 결국 원하는 것에 상응하는 비용의 문제로 귀착이 된다.

 

우리가 목표를 세우고 추구해가다가 이게 내가 감당할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거나 그 과정에서 비용이 너무 커서 견딜 수가 없다고 판단할 때 그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물론 포기한다고 해서 잘못 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뜻을 세우고 의욕을 가지고 해보다가 그만 두거나 포기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람은 현명해지고 지혜가 생긴다.

 

포기와 좌절은 우리를 단련시켜서 강하게 만들며 또 현명하게 만들어준다.

 

그 결과 어떤 가지고 싶은 것이 생겼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을 나만이 아니라 萬人(만인)이 가지고자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욕심을 내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걸 가지려면 萬人(만인)을 다 넘어서야만 되는 일이니.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꼭 그것을 가지고 싶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목숨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할 것이다. 건다고 해서 꼭 될 턱이 없다, 목숨을 거는 놈이 나 말고도 몇 명은 될 터이니 말이다. 그랬을 때 그것을 얻을 확률은 대략 10% 정도 된다.

 

올인을 하고도 성사될 확률이 1/10에 불과할 때 고민을 좀 해봐야 한다. 목숨을 거는 게임이니 성공하려면 나머지 아홉 명을 다 죽여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게 바로 오징어 게임이다.

 

돌아가서 얘기이다.

 

내가 가지려는 것을 포기시킬 수 있는 자는 바로 나 자신이란 사실이다. 계속해서 하고픈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다, 공연히 運(운)을 핑계로 삼을 일이 아니란 얘기이다.

 

 

진짜 '레알'한 세상의 이치 다섯가지

 

 

세상의 액면 그대로의 이치, ‘레알’한 이치를 이제 다섯 가지로 정리해본다.

 

첫째,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

둘째, 원하는 것을 가지려면 그에 따른 비용이 든다는 사실.

셋째, 원하는 것과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잘 따져서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

넷째, 가지려고 하는 자가 여럿일 경우 가장 높은 비용 혹은 가격을 부르는 자가 가지게 된다는 사실. (경매의 이치)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상응하는 비용을 다 치르고 가지긴 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미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즉 가성비가 기대보다 못할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고 그게 단순한 단기 게임이 아니라 전 인생에 걸친 시도였다면 그야말로 삶의 空虛(공허)를 맛보게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이 꼴을 보려고 그 개지랄을 떨었단 말인가! 하면서.

 

 

運(운)을 핑계 삼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운이 다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법은 없다, 다만 지레 알아서 포기하는 경우가 있을 뿐. 그리고 원하는 바를 달성했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 또한 아니란 사실이다.

 

욕망은 삶의 근원적인 推動力(추동력), 즉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동시에 盲目(맹목)적인 에너지이기도 하다.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누군가 나 호호당에게 물어온다면 “응, 그건 욕망 자체야” 라고 답하고 싶다. 그리고 이 말은 나 호호당이 생각해낸 답이 아니다. 오리지널은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 삶은 갈애와 집착의 두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러 천 년 전에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분 말이다.

 

渴愛(갈애), 기가 막힌 표현이다. 목이 마른 사랑이라 하니 그렇다. 먼 옛날 논산 훈련소에서의 추억이다, 훈련 중에 땀이 비 오듯 쏟아져서 마구 갈증이 날 때 콜라 한 병 마셨으면 얼마나 시원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執着(집착), 마음에 매달아 놓은 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는 안타까움, 이 또한 기가 막힌 표현이다.

 

행복을 얻기 위해 목숨을 포함해서 모든 걸 다 버리고 극단적인 苦行(고행)을 한 결과 이건 길이 아니네! 하면서 돌아섰던 싯다르타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쿨 가이(cool guy)!

 

 

삶이란 무엇인가? 하면 갈애와 집착이라 

 

 

우리 모두 욕망을 한다, 그리고 욕망을 하다가 견딜 수가 없으면 내려놓을 일이고 비용을 치를 용의가 있으면 끝까지 가본다, 이게 우리의 삶이다. 덧붙여서 한 마디,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해서 그게 행복해진다는 보장 또한 절대 없다. 이게 이 세상에서 운과 명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감히 자신하는 나 호호당의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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