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청람의 하늘에 붉디 붉은 단풍의 빛, 곧 겨울이 올 것이니 늦가을 빛들이 허공에서 그리고 사물을 만나 튕기고 또 부딪쳐서 작열하고 또 진동하고 있다. 며칠 지나면 잿빛의 하늘과 음울한 공기가 밀려올 것을 생각하면 저 빛을 내 눈에 새겨야지 하지 욕심을 부려본다. 

 

 

아파트 앞 작은 산책길 위로 말라 떨어진 마로니에 잎사귀들이 수북하다. 며칠 전만 해도 황금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는데 이젠 저처럼 초라하구나. 청소하는 아저씨들이 곧 쓸어담아서 치우겠지, 그러니 잘 가, 마로니에 잎사귀들아. 내년 가을 또 온다하지만 올 가을은 다시 못올 것이니 시간은 돌아오는가 아니면 흘러가버리는가? 늘 생각하게 만든다. 삶은 돌아오는가 흘러가버리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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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해지고 오래지 않은 저녁 시간, 보름 가까운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달빛은 습윤한 공기 속에서 온화하게 퍼지고 번져갔다. 안데르센의 "그림없는 그림책"이란 단편집이 떠올랐다. 수십년 전에 읽었던 동화책, 성인을 위한 동화책이다.  대도시에 나와 쪽방을 얻어 지내는 가난하고 고독한 젊은 시인의 창가에 밝은 달님이 찾아와 여러 얘기를 전해주면서 위로해준다는 설정의 이야기책.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슬픈 얘기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저 달이야말로 안데르센의 그 달이 아닐까, 잠시 상념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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