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 내리고 이어 진눈깨비로 변해갔다. 덩치 큰 까마귀가 아아악-하고 큰 소리로 울었다. 그러곤 둥지에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새들은 눈을 맞아도 비를 맞아도 몸이 젖지 않는다는데, 기름으로 감싸고 있다지만 그래도 춥지 않을까? 하고 늘 염려를 하는 호호당이다. 하늘을 빠르게 질러가는 낮은 고도의 잿빛 구름들이 비를 뿌리다가 금새 눈송이를 흩뿌리곤 했다.  오늘 하루는 그야말로 그레이의 향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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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지나고 또 다시 한 해가 시작되고 있다. 시간의 길이 이어져간다. 먼 길 가는 것은 고단하고 힘들다. 그러니 함께 길을 걸어갈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기도 하고 부축해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로 서로를 도닥이고 때론 크게 고개를 끄덕여주면서 가야만 먼 길 고단한 길 마침내 끝까지 걸어갈 수 있다. 독자님들에게 당연히 그런 동행할 이가 있겠지만 혹시 아직 없다면 올 한 해만큼은 그런 사람 만들어보시라고 권유하고 싶다. 성의를 다하고 마음을 열어 사람을 찾으면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니, 꼭 그렇게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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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흑연으로 산수화를 그렸으니 차콜 산수화이다. 빛이 약해서 원본보다 이미지가 좀 약하다. 그래도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올린다. 이 그림은 오래 전 중국에 있을 때 실제 갔었던 곳의 풍경을 약간 변형한 것이다. 최근 나 호호당이 가장 아쉬운 것은 건장한 신체 특히 다리이다. 그림을 통해 마음으로나마 자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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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이지만 며칠 사이 온도가 높아서 마치 초봄같은 느낌이다.  지인과 함께 우면동에서 한강을 건너갔다 왔다. 오는 도중에 잠수교 가운데 정차 가능한 곳에 차를 세우고 다리 난간에 기대니 밤바람이 시원했다. 원래 저 세빛둥둥은 오세훈 시장이 음악당으로 만들었던 것인데 박원순이가 반대파를 응징한답시고 망쳐놓았다. 서울의 명물이 될 수도 있었는데 아깝다.  증오를 원동력으로 하면서 겉으론 통합을 외친다, 정치란 그런 것일 수밖에 없을까? 아무튼 춥지 않은 겨울밤의 정경이다. 

 

호호당이 사는 우면동, 우면산 자락 아래 동네에 가면 이끼 서린 회화나무를 마주하고 섰는 동자미륵상이 있다. 산책갈 때마다 들러서 소원을 빌곤 한다. 건강하게  해주세요, 동자미륵님! 하고. 동네 골목 안에 있어서 가서 빌 때마다 동네 주택의 개가 큰 소리로 짖어댄다. 넌 누구냐! 왜 와서 신경 쓰이게 하냐! 하며 짖는다. 담배 끊은 후 몇 달만에 처음으로 드로잉을 하고 담채를 올렸다.  어서 봄이 왔으면 한다. 즐겨주시길...

 

동지 때는 오른 쪽 빌딩(LG전자 서초R&D 캠퍼스)에 붙어서 해가 뜨더니 이젠 점점 왼쪽 즉 북쪽을 향햐 옮겨가고 있다. 아중에는 왼쪽 건물도 지나갈 것이다. 일찍 일어나다 보니 일출 모습도 매일 구경하게 된다. 담배 끊고 일찍 일어나고, 참 이거야 바로 새나라의 어린이가 아니라 영감님이 아닌가!

길고 긴 겨울밤 울적해서 지인과 함께 집 근처의 맥도날드 24시 가게를 찾았다. 일동제약 사거리 근처 매장이다. 2층에서  치즈스틱과 커피를 마시면서 내려다본 경치가 예뻐서 찍었다. 건너편의 헤어샵과 콩나물 국밥의 불빛이 아름답다. 저 바깥은 영하 12도, 엄동이다. 젊은 날엔 추위를 무시했는데 이젠 겁이 난다. 다시 건강해지고 몸이 뜨거워져서 추위를 비웃을 날이 왔으면. 

어제 오후 나절 날도 푸근했다. 산책을 하다가 남쪽 하늘을 올려보니 앙상한 가지 위 푸른 색이 차갑지가 않았다. 어쭈, 제법 포근한 맛이 있네, 아직 겨울이 한창이지만 그래 가끔은 저런 색깔도 보여줘야지! 하면서 흥겨워했다. 하지만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영하 10도를 오르내린다 하니   겨울은 겨울이네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겨울이 싫어졌다. 옛 사람들이 봄을 기다렸던 심정, 이제 십분 납득이 된다. 성남 비행장에서 군용기가 한 대 빠르게 지나갔나 보다. 비행운이 길게 드리워져있다. 

 

시각은 5시 46분, 일몰 후 15분이다. 어두워지고 있지만 아직 밤은 아닌 저 광경, 눈에 덮힌 지붕들과 나무 우듬지 위로 빠르게 밤이 내리고 있다. 어둑어둑, 곧 중간의 빛은 사라지고 빛과 어둠으로 나뉘리라. 이 애매한 시각, 일몰 후 밤이 되기 전의 짧은 이 애매한 중간의 빛과 풍경을 사랑한다, 사랑해왔다. 새들은 오늘 먹지 않았으니 배가 고프려나? 아니면 하루 이틀 못 먹는 것은 자연에선 그냥 일상의 일일까?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가고 있다. 내 삶도 마찬가지. 

 

강아지가 숨을 거두었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鳳(봉), 김봉. 예전 동작동 살 때 길에서 데려온 유기견이라 나이를 모르지만 2010년 5월5일 우리에게 와서 2023년 12월31일에 내 품을 떠났다. 13년여의 세월이었다. 이번의 봉이까지 그간 3마리의 강아지를 떠나보냈고 미니 토끼 한 마리 그리고 초겨울 동작동 뒷산 공원에서 봉이가 발견한 버려진 고슴도치 한 마리, 모두 다섯 마리를 떠나보냈다.

 

이번 봉이를 보낼 때에도 여러 차례 嗚咽(오열)했고 많은 눈물을 쏟았다. 그 바람에 1월1일 새해 첫날 나는 아내와 함께 경기도 광주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저녁엔 아들과 함께 강아지 뼛가루를 들고 나가서 녀석이 늘 다니던 산책길을 따라 조금씩 뿌려주었고 일부는 양재천에 걸린 다리 위에서 흐르는 물위에 뿌렸다. 흰 가루가 물속에서 안개처럼 퍼지면서 한강 쪽으로 흘러갔다.

 

이제 중년의 강아지 한 마리만 남았는데 이젠 나도 나이가 70인 탓에 마지막 강아지가 될 것 같다. 2003년부터 20년간 강아지들과 많은 즐거움을 누렸고 또 가슴 아프게 떠나보냈다. 한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사진은 마지막 잠든 모습이다.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