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의 모든 생명은 입하로서 가장 빈곤하나니 

 

 

어제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었고 아울러서 여름의 기운이 들어서는 立夏(입하)였다.

 

입하는 한 해를 나누는 24절기 중에서 여름을 알리는 절기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은 늦봄이지 여름이 되었다고 여기진 않는다. 피부로 느끼는 여름, 즉 熱氣(열기)의 여름은 5월 20일의 小滿(소만)부터라 하겠다.

 

해마다 5월 초의 이맘 때 즉 입하 무렵은 한 해를 통틀어 자연이 가장 가난한 때이다. 자연만이 아니라 자연 속의 모든 생명들 역시 가장 빈곤한 때이다.

 

바깥을 내다보면 푸른 하늘 아래 신록이 나오고 새들이 힘차게 날아다니건만 어떤 이유로 가장 빈곤한 때라 하는가? 만물이 그야말로 싱싱하게 躍動(약동)하는 이 좋은 계절을 두고 가장 빈곤한 때라고 얘기하는 것은 실로 대단한 모순이자 역설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입하 무렵에 자연은 가장 가난한 것은 사실이고 진실이다.

 

오늘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인식이 대단히 편향적이라는 것,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오늘의 얘기를 통해 알려드리기 위함이다.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은 말로 하는 것보다 열배는 힘들다. 말은 직관적으로 아무런 두서없이 꺼내도 듣는 이와 주고받는 가운데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만 글은 어떤 형식을 취하든 논리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피곤한 일이지만 독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얘기를 전개해보자.)

 

 

왜 입하 무렵에 모든 것이 가장 빈곤하고 가난한 것일까? 

 

 

예를 들어본다. 예컨대 나무가 가장 영양이 풍부하고 건강한 때는 11월 8일 경의 立冬(입동), 즉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다.

 

이 무렵 나무는 여름내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영양분의 축적이 최고조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매달고 있던 나뭇잎 속에 남아있던 엽록소(일종의 자양분)를 몸속으로 다시 회수해버린 다음 낙엽으로 털어낸다, 이제 소용이 없으니.

 

따라서 나무 몸통 속의 자양분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래야만 겨우내 그간에 쌓아놓은 자양분을 가지고 내년 봄까지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겨울 동안 나무는 소비만 할 뿐 더 이상의 영양분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무는 한 해 중에 입동 무렵, 낙엽이 질 무렵에 가장 건강하다.

 

그리고 겨울이 온다. 나무는 겨울잠에 든다. 최소한의 생리활동만 하면서 자양분을 조금씩 소비해간다. 다시 얘기지만 더 이상의 생산은 없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생산은 없고 소비만 하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해온다면 그 답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새 해가 되어 새 잎사귀를 만들어서 광합성을 시작할 때까지 생산은 없고 소비만 있다.

 

나무가 새 잎사귀를 만들어 광합성을 시작하는 때는 평균적으로 바로 입하 무렵, 바로 지금이다. 나무에 따라 벚나무와 같은 나무는 4월 중순부터 새 잎을 만들어 광합성 즉 생산에 들어가지만 평균적으로 나무들의 광합성이 시작되는 시기 즉 생산 활동이 시작되는 때는 지금 입하 무렵인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새 잎사귀, 우리들이 新綠(신록)이라 부르는 그 잎사귀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그 역시 다량의 자양분을 지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무가 새 잎사귀를 만들기 위해 자양분을 별도로 준비하기 시작하는 때는 2월 초순, 즉 새 해가 시작되는 입춘 무렵부터이다.

 

 

나무의 딜레마 

 

 

그렇기에 입춘 무렵이 되면 나무는 고민 또는 딜레마에 빠진다. 광합성을 통해 신규 생산을 하려면 5월 초순의 입하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까지 먹고 살 자양분이 이제 그다지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새 잎사귀를 만들어내려면 그 역시 다량의 자양분을 필요할 것이니 별도로 비축해야 한다. 일종의 신규 투자를 위한 자양분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입춘부터 나무는 새 잎을 만들기 위한 자양분도 필요하고 아울러 5월 초의 광합성을 시작할 때까지 소비할 자양분도 필요해진다.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 하는 문제, 이미 그간에 축적된 자양분은 신규 투자는 고사하고 5월 초까지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판국에 훗날의 생산을 위해 새 잎사귀를 만들어낼 별도의 자양분을 따로 남겨야 하는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우리 인간 역시도 같은 딜레마를 안고 산다. 

 

 

이를 사람으로 바꾸어서 얘기해보자. 은퇴를 한 퇴직자가 있다고 하자. 퇴직을 했으니 퇴직금을 뭉칫돈으로 받았다고 하자. 퇴직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매달 생활에 들어갈 비용을 계산할 것이고 아울러 계속해서 소비만 할 순 없다는 생각에 작은 가게라도 하나 열어볼 생각도 할 것이다.

 

앞의 것은 일용할 양식인 것이고 뒤의 것은 투자용 자금이다. 투자할 자금을 크게 잡으면 매달의 생활비를 줄여야 할 것이고 그 반대로 하면 투자할 자금이 너무 적어서 다른 경쟁자에 비해 불리할 것이다.

 

전전긍긍 많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그냥 소비만 할 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에 결심, 즉 가게를 하나 열기로 마음을 가져야 할 때가 온다. 앞으론 인생 100세라고 하는데 도저히 소비만으로 감당이 될 것 같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생각하지도 않던 비용 지출도 생기게 된다. 자녀 학비라든가 결혼에 따른 비용 같은 거 말이다. 그 바람에 당초 생각보다 자금이 더 줄어든다. 생활비도 더 아껴서 쓰는 마당에 이제 가게를 하나 열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면 그 당사자의 마음이 그 얼마나 떨리고 걱정이 클 것인가 말이다.

 

퇴직자의 고민이나 나무의 입장, 즉 새 해가 되어 새 잎사귀를 만들 자금과 함께 소득이 생길 때까지 먹고 살 자금을 동시에 생각하는 나무의 고민이나 하등의 차이가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나중에 필요하게 될 투자 자금을 사전에 정확하게 계산해놓기도 어려울 것이고 이 정도 비용이면 되리라 여겼던 당초의 계산이 어긋날 확률도 크다는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정작 결심을 해야 할 시점이 되면 이도 저도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게도 된다.

 

우리 인간이 그렇듯이 나무 또한 정확하게 계산해 놓고 겨울잠에 드는 것은 아니다. 겨울이 더 혹독하게 추울 경우 그를 견디기 위한 자양분의 소비나 비용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입하로서 모든 생명체들은 치열하고 처절한 생존경쟁을 시작한다.  

 

 

立夏(입하)는 앞에서 예로 든 나무의 입장에서 이제 과감하게 신록을 매달아 놓고 생산에 들어가는 때이다. 혹시라도 인근의 나무가 가지를 더 높이 올려 잎사귀를 매다는 바람에 자신에게 떨어질 그야말로 피와도 같이 소중한 햇빛을 가로 챌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들 역시 인근의 나무는 라이벌이다.

 

그렇기에 5월 5일의 입하는 그야말로 자연의 모든 생명들이 가장 궁핍한 상태에서 이판사판 승부수를 던지면서 치열한 생존경쟁에 본격 돌입하는 때라 보면 된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우리 사람들은 그저 5월은 푸르구나, 만물이 약동하는구나 하는 감상을 얻지만 알고 보면 치열한 삶의 게임, 생존경쟁이 바야흐로 요이땅-하고 시작하는 살벌한 계절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나무를 예로 들어 얘기했지만 알고 보면 자연 속의 모든 생명들이 그렇다. 새들 역시 겨우내 단백질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허약한 때가 지금이다. 풀벌레가 나와서 돌아다녀야만 열심히 영양 섭취를 할 터인데 그 와중에 새들은 이맘 때 짝짓기까지 한다. 애도 낳고 키우면서 영양분을 스스로도 벌충하고 또 새끼들까지 먹여야 하니 새들 역시 대단히 고달픈 때, 죽기 아니면 살기의 때가 지금 입하 무렵이다.

 

몸매가 작아서 보기에 대단히 귀여운 물총새를 보자. 봄에 번식을 하는데 새끼들을 부양하기 위해 입하 무렵부터 애비 수컷은 하루에 50마리 정도의 작은 물고기를 사냥해온다고 한다. 하루 종일 아내가 새끼들을 지키고 있는 둥지로 50마리를 물어서 운반해야만 부부도 먹고 새끼들도 부양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얼마나 피곤한 물총새의 삶인가!

 

 

자연 속엔 평화가 없다. 

 

 

아름다운 숲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은 아, 자연은 참으로 평화스럽다는 찬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들의 관념일 뿐 그 숲속엔 나무와 풀들, 그곳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들이 처절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다. 자연은 절대 평화스럽지가 않다.

 

5월은 하늘이 푸르고 해가 길어지며 신록이 나오고 만물이 약동하는 계절이라 여긴다면 그건 우리들의 착각일 뿐, 5월로서 자연 속의 모든 것은 가장 빈곤하고 그렇기에 한 치도 양보 없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시작한다.

 

60년에 걸친 운명의 순환에 있어서도 입춘 바닥으로부터 15년이 경과한 입하의 때가 되면 그 사람은 가장 빈곤하고 부실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살기 위해선 이를 악물고 또 다시 투쟁과 싸움에 나선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헝그리 복서의 때라고 전에 얘기했다.

 

5월 초부터 여름이다.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 되었다. 달리 말하면 나가서 생산하고 또 싸우기 좋은 계절이 되었다. 생산이 바로 싸움이다. 5월부터 6개월간 그러니까 11월 초의 입동까지 각자는 각자만의 전쟁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홧팅! 해보자.

 

이처럼 나 호호당의 자연순환운명학은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逆說(역설)들로 가득하다. 마치 니체의 철학과도 같다.